[당뇨와 친구합시다]<下>관리 소홀로 고생 탤런트 이치우 씨

  • 입력 2007년 6월 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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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 환자는 대부분 당뇨에 걸렸다는 말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의사의 주문은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 ‘혈당 점검을 자주 해야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등의 ‘평범한’ 처방이기 때문이다. 환자는 당뇨 진단을 받더라도 특별한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첫 진단을 받고 병원을 거의 찾지 않다가 합병증이 나타나야 병원에 가는 사람이 많다.

성우 겸 탤런트 이치우(69) 씨도 딱 그랬다. 34세에 당뇨에 걸린 사실을 처음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50, 60대에 합병증으로 폐 수술만 두 차례, 심장 수술을 한 차례 받았다.

“첫 진단을 받은 1970년대 초만 해도 당뇨라는 게 대중적인 병이 아니었어요. 관리를 잘 못하면 온갖 합병증이 올 수도 있고, 결국은 죽기까지 하는 무서운 병인 줄 알았다면 그때부터 잘 관리했겠지요.”

이 씨는 23세에 연극배우와 성우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가난한 연극배우에게 허용된 유일한 사치는 연습이 끝난 밤 동료들과 어울려 마시는 술이었다. 그는 2L짜리 소주병을 혼자 비울 정도로 ‘말술’이었다.

“당뇨에 가장 위험한 게 과음, 과식, 과로라는데 술을 마시면 당연히 과식하게 되고, 낮엔 일하랴 밤엔 술 마시랴 과로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요.”

몸에 별 이상을 느끼지 못하다 주연 탤런트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 몸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TV 일일 드라마 ‘한중록’에서 영조 역할을 맡았을 때 피로감이 심하고 소변이 자주 마려운 데다 노란색까지 띠는 것이 아닌가.

서울대 의대를 다니던 동생 성우(전 동국대 경주병원장·현 강릉 동인병원 방사선과 의사) 씨가 “당뇨병인 것 같다”고 말해 병원을 찾았다. 첫 병원에선 단순한 몸살이라고 했다. 하지만 쉬어도 피로감이 가시지 않자 다른 병원을 찾아 다시 진단을 받았더니 당뇨가 심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씨는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탤런트로서 한창 주가가 높을 때였고, 약을 잘 먹으면 낫겠거니 싶었다. 몸이 좀 괜찮아졌다 싶어지자 다시 무절제한 생활을 계속했다. 담배를 하루 2갑씩 피웠고, 녹음과 녹화를 하느라 밤샘 작업하기 일쑤였다. 전국 순회 공연을 다닐 때는 고장마다 유명한 산해진미를 마음껏 먹었다.

결국 50대가 됐을 때는 방송 드라마에 출연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허약해졌다. 기침이 계속 나왔고 조금만 일해도 피로가 엄습했다. 대본도 잘 외워지지 않았다. 밤샘 촬영을 하다 피를 몇 번 토하고 나서야 덜컥 겁이 났다.

“병원에서는 ‘러닝셔츠에 구멍이 나듯 폐에 구멍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면역력이 떨어져 폐결핵과 함께 ‘아스페르질루스’라는 곰팡이 균에 폐가 감염됐다는 거예요. 당뇨는 이처럼 10년 이상 소리 없이 진행되다 어느 날 합병증의 얼굴로 복병처럼 달려듭니다.”

6개월간 항생제를 먹었지만 듣지 않았고 결국 폐의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1990년대 말 50대 후반의 일이다.

“조금 나아졌나 싶어서 간간이 술도 마셨는데 결국 더 큰 수술을 받았지요.”

2003년 드라마 ‘태조 왕건’에 출연할 때였다. 한밤중에 남한산성에서 촬영 중 피를 토했다. 스태프와 후배들이 깜짝 놀라며 출연을 말리자 이 씨는 “드라마 각본상 나를 죽여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태연히 대답했다. 결국 드라마에서 죽은 뒤 분당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폐 질환이 재발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두 번째 폐 수술로 다시 폐를 잘라 내는 바람에 이 씨의 폐는 현재 3분의 1만 남아 있는 상태다.

폐 수술을 한 지 몇 달 뒤에는 심근경색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이 역시 당뇨 환자에게 흔히 생기는 합병증이다. 이 씨는 무릎의 혈관을 떼어 내 심장에 이식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두 차례의 대수술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이 씨는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되도록 걸어 다니고 매일 골프 연습장에서 운동도 열심히 한다. 하루에 두 번 인슐린 주사도 빼놓지 않고 맞는다.

이 씨는 “아버지(고 이종록 씨)가 제7회 동아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로 건강한 집안이라 내가 그렇게 당뇨를 관리하지 않았는데도 합병증이 이 정도에서 그친 게 천만다행”이라며 “당뇨 진단을 받은 사람은 술과 담배를 절대 하지 말고 의사의 말을 열심히 듣고 운동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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