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행동으로 보여 주는 日정부‘낙하산 근절’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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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타(成田)국제공항회사의 차기 사장 인사가 발표된 22일 일본의 관청가는 크게 술렁거렸다.

도쿄(東京)의 관문인 나리타공항을 관리하는 이 자리는 국토교통성(구 운수성) 차관이나 해상보안청장이 퇴임 후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는 이른바 ‘지정석’으로 꼽혀 왔다.

주무 관청인 국토교통성은 관례에 따라 운수성 차관 출신인 구로노 마사히코(黑野匡彦) 사장을 유임시키기로 일찌감치 내정한 상태였다.

예전 같으면 아무 일 없이 통과될 지극히 상식적인 인사안이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최고 권부인 ‘총리 관저’에서 제동을 걸고 나섰다.

국토교통성은 “인근 주민들과의 원만한 대화를 통해 공항 최대 현안인 확장 용지 확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구로노 사장이 적임자”라고 설명했지만, 관저 측은 “관료 낙하산은 안 된다”며 요지부동이었다.

관저 측의 강경한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예 국토교통성을 배제하고 민간 경제단체인 일본 경단련에 적임자를 추천하도록 한 것.

이런 우여곡절 끝에 정치권이나 관계(官界)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순수 민간인’ 모리나카 고사부로(森中小三朗·64) 스미토모상사 전 부사장이 차기 사장으로 확정됐다.

낙하산 인사에 관한 일본 정권 핵심부의 생각을 읽게 해 주는 일은 한 달 전에도 있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올가을 신설하는 자율규제법인 이사장에 하야시 마사카즈(林正和) 전 재무성 차관을 내정했다고 지난달 24일 발표한 뒤 한바탕 진땀을 뺐다.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 행정개혁상과 총리 관저 측이 “(민간인이 아닌 관료 출신을 내정한 것은) 정권에 대한 도전”이라며 펄펄 뛰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부르짖는 ‘낙하산 근절’이 말뿐인 정치 쇼가 아니냐는 의심이 일본 국민 사이에서 적지 않았지만 나리타공항 사장 인사가 발표된 이후 분위기는 일변했다.

만약 아베 정권이 총리의 정치 참모나 여당 정치인을 나리타공항 사장으로 임명했다면 일본 사회는 비판 여론으로 들끓었을 것이다.

“남이 하면 낙하산, 내가 하면 개혁인사인가.” “남이 가면 외유관광, 내가 가면 혁신포럼인가.”

일본과는 아주 대조적인 공기업 ‘낙하산 감사’들의 남미 외유 파동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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