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운찬 씨에게 ‘꽃가마’는 없었다

  • 입력 2007년 5월 1일 0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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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의 잠재적 대선후보로 주목받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어제 기자회견을 열고 “17대 대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치 지도자는 비전과 정책만으로는 안 되고 정치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가 밝힌 불출마 이유다. 현실정치에서 세(勢)가 없이 뜻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그가 몰랐다면 너무 순진했거나, 누군가가 ‘꽃가마’를 태우러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다는 얘기밖에는 안 된다.

정 씨는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이겠지만 그가 우리 정치와 지식인 사회에 남긴 상처는 결코 가볍지 않다고 본다. 반 년 가까이 정치 참여 여부를 놓고 어정쩡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인의 전형”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정 씨는 이를 개인적인 문제라고 할지 모르나 다수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전직 서울대 총장이라는 직함이 주는 의미는 단순한 공인(公人)의 그것 이상이다.

정 씨는 현란한 언어의 유희(遊戱)로 자신의 의도를 감추거나 포장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정치의 구태(舊態)인 기회주의, 인물 중심의 급조 정당 추진, 지역주의 편승 등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정치판을 떠나는 그에게 우리가 흔쾌히 손을 흔들어 줄 수 없는 이유다. 정 씨는 반 년 동안 정치를 즐겼을지 모르나 그에게서 배워야 했던 학생과 그를 교수로 두고 있는 서울대가 받은 유형무형의 손실은 적지 않을 것이다.

고 전 총리에 이어 정 씨마저 중도 포기함으로써 범여권이 그동안 추진해 온 신당 창당과 통합은 더욱 어려워졌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이념이나 정강정책은 따져 보지도 않은 채 적당한 인물을 구심점 삼아, 이 세력 저 세력 끌어 모으기만 하면 된다는 정략적 발상이 정치권 밖의 전혀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을 부풀리고 부추긴 면이 있기 때문이다.

활로가 안 보이면 정치판 자체를 흔들고, 사람이든 당이든, 뭐든지 끌어다 쓰면 된다는 편의적 발상이 우리 정치 발전의 암적(癌的) 장애요인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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