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상준]몽골 의인들이 남긴 메시지

  • 입력 2007년 4월 7일 02시 59분


5일 밤 기자는 특별한 파티에 초대됐다. 파티 참석자는 파타(36), 바트델게르(37), 삼보도느드(22), 곰보수릉(26) 씨와 곰보수릉 씨의 아내 차츠랄(26) 씨 등 몽골인 5명.

이들은 몽골에선 쇠고기나 양고기보다 비싼 삼겹살을 앞에 놓고 서로를 축하했다.

생김새는 한국 사람과 거의 구별되지 않지만 늘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만 했던 이들은 이날부터 ‘불법 체류자’란 꼬리표를 뗐다.

“왜 한국 정부가 체류를 허가해 준 거죠?”

오른쪽 손등에 작은 상처가 난 곰보수릉 씨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기자에게 물었다. 상처는 도망치듯 응급실을 빠져나오면서 직접 링거 주사를 빼다가 난 것.

기자가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지난달 17일 발생한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주상복합건물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11명의 생명을 구해낸 몽골인 4명에 대해 특별 체류를 허가했다’는 법무부의 보도 자료를 보여 주자 비로소 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지난달 23일 수소문 끝에 몽골 ‘의인’들과 연락이 닿았지만 이들은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신분 노출을 우려하면서도 “별로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게 거절 이유다.

어렵사리 만난 파타 씨는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고도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서운함이 있을 법한데도 “지금까지 내가 도와준 한국인보다는 날 도와준 한국인이 더 많았다”며 멋쩍어했다.

한국 정부가 이들에게 특별 체류를 허용한 것도 이들의 이런 순수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큰 선물이 전해지던 날, 서울 영등포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선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네덜란드 시민단체인 ‘암스테르담 및 공항추방자보호소 감시단체’의 얀 파울 스미트 사무국장은 “한국 정부가 2월 발생한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의 피해자들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5년 10월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의 외국인보호소에서 불이 나 불법 체류자 11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친 사고가 났을 때 네덜란드에선 법무부 장관과 주택부 장관이 사임하고 생존자 39명에게 체류허가권을 줬다는 것.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불법 체류자는 21만 명을 넘어섰다. 이들을 모두 합법 체류자로 인정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사회가 이들을 범법자나 부랑자인 양 내몰아서는 안 되는 이유를 몽골 의인들이 온몸으로 보여 줬다.

한상준 사회부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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