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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1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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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30대 부인이 상담을 신청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섬뜩했다. 자살용 수면제를 늘 갖고 다니며 기회를 엿본다고 했다. 증권회사 부장인 남편과의 불화가 원인이었다. 주식에 투자하느라 돈을 모조리 날리고 빚쟁이에게 쫓겨 다니는 처지에서도 바람을 피운다고 말했다. 부인은 남편이 죽도록 밉지만 그를 죽일 수 없으니 자기가 죽겠다는 식이었다.
자살의 또 다른 유형은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시도다. 이 역시 프로이트의 전도이론에 들어맞는다. 2005년에 사회 저명인사가 줄줄이 자살했다. 이수일 전 국가정보원 차장, 박태영 전남도지사, 안상영 부산시장, 남상국 전 대우사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무리한 압박과 모멸적인 대우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이들은 자살을 택했다.
유명 톱스타는 인기가 갑자기 추락하거나 악성 루머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악플을 날리는 사람은 자신에 대한 저주를 제3자에게 전가하는 비뚤어진 심리 상태를 가졌는데 일부 연예인은 이들의 공격을 심리적으로 견뎌 내지 못한다. 문제는 유명인의 자살이 모방 행동, 즉 베르테르 효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영화배우 이은주 씨가 자살한 이후 1년 동안 청소년의 자살이 2.5배 급증했다.
자살은 가족과 친지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안겨 준다. 우리 속담에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평생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자기 책임인 양 평생 슬퍼한다.
세계적으로 봐서 한국은 자살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국가다. 하지만 과거 먹고살기 힘들었던 6·25전쟁 중에도 한국인은 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정반대로 정신력이 강하고 끈질겼다.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보릿고개도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에 대한 애착, 삶에 대한 투지는 어느 때보다 나약해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사회가 극도의 경쟁 분위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은 치열한 학업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여서 출세하려면 남을 이겨야만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승리자보다는 패배자가 더 많지만 사회에서 패배자가 설 땅은 적다. 패배자를 감싸 안고 격려해야 하는데 오히려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손가락질한다.
대학입시 결과가 발표되는 시점이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수만 명의 청소년이 실망하고 우울증에 빠져 있다. 이들이 삶에 대해 자포자기적 생각을 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애써야 한다.
자살은 본인의 목숨을 끊는 자기 파괴에서 끝나지 않는다. 가족을 파괴하고 전체 사회의 분위기를 어둡게 가라앉힌다. 부모는 자녀를 따뜻이 감싸 주고 용기를 북돋아 줘야 한다. 사업이 잘되지 않거나 승진하지 못한 가장에게는 아내와 자녀의 격려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힘이 된다. 자살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가족과 사회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이훈구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복지사회운동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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