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고노 담화’를 흔드는 어리석음

  • 입력 2007년 2월 1일 02시 59분


부정을 하자는 것인가, 수정을 하자는 것인가.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고노 담화’에 대해 시비를 건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문득 떠오른 의문이다. 부정을 원한다면 후안무치하고, 수정을 원한다면 소탐대실이다.

‘고노 담화’가 뭔가. 1993년 일본 정부가 군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죄한 국가 공식문서다. 이 담화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일본 정부가 1년 8개월간 자체 조사한 결과를 근거로 당시 정부 대변인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이 발표한 것이다. 그만큼 진실과 무게가 있다.

‘고노 담화’는 군 위안부의 존재뿐 아니라 모집과 이송, 관리에도 군대가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했다. 담화는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나가겠다”며 군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까지 담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정치인들은 딴소리를 하고 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정치인들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거나 “담화가 매우 부정확하다는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기네 정부가 조사한 것조차 믿지 않겠다는 태도다.

‘고노 담화’에 대한 일체의 시비는 그만뒀으면 좋겠다. 사실관계가 뒤집혀 ‘고노 담화’가 취소될까 봐 걱정돼서가 아니다. ‘고노 담화’는 전쟁을 통해 평화를 사랑하게 됐다는 일본의 주장을 그나마 뒷받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증거 중의 하나여서다. 전쟁이 끝나고 48년이나 지나서야 겨우 내놓은 ‘자기고백서’마저 부인하는 일본의 얄팍함을 보고 싶지 않아서다. 달리 말하면 일본을 위해서다.

‘무라야마 담화’가 좋은 예다. ‘무라야마 담화’는 패전 50년이 되던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발표한 ‘사죄의 결정판’(‘화해와 내셔널리즘’·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지음)이다.

‘무라야마 담화’가 축복 속에 나온 건 아니다. 무라야마 정권은 자민당 신당사키가케 사회당의 연립정권이었고, 무라야마 총리는 압도적 소수인 사회당 당수였다. 그런데도 ‘무라야마 담화’가 빛을 보게 된 것은 무라야마 총리가 ‘전후 처리를 매듭짓겠다’는 역사적 사명감에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와카미야 논설주간의 분석이다. 지금도 일본 정계의 주류인 자민당은 당시에도 ‘무라야마 담화’에 비판적이었다. 자민당의 거물 정치인들은 침략과 식민 지배를 부정하는 잇단 망언으로 ‘무라야마 담화’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일본 정부에 ‘무라야마 담화’만큼 요긴한 ‘피난처’도 없다. 사죄의 진정성을 의심받을 때마다 구구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일본 정부는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존중한다”고 해 버리면 그만이다. 실제로 그렇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마지못해 만들어 놓고 이처럼 잘 써먹는 ‘방패’도 없다.

‘고노 담화’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갖고 있어야 할 유효한 방패다. 없애려고 하는 것은 국익을 무시한 단견이다. 일본의 잘못은 과거의 잘못이 아니라,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늘의 잘못이다.

‘고노 담화’는 이렇게 끝난다.

“또한 본 문제에 관하여는 우리나라에서 소송이 제기돼 있고, 또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쏠리고 있어 정부로서는 앞으로도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여 나가겠다.”

‘앞으로도 기울이겠다던 충분한 관심’이 담화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는 건 어이없다. 만약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싶은 정치인이 있다면 ‘무라야마 담화’부터 문제 삼으라고 말해 주고 싶다. ‘무라야마 담화’를 무너뜨리면 ‘고노 담화’는 저절로 무너진다. 그럴 만한 정당성을 갖고 있지 못하면서 애꿎게 ‘고노 담화’만 건드리는 것은 비겁하다.

‘고노 담화’에 문제가 있다고 선동하는 행위는 어린 소녀를 꾀어 군 위안부로 내보낸 행위와 똑같이 기만이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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