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천정배 씨의 경우

천정배 의원은 1995년 9월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발기인이었다. 4년 3개월 뒤인 1999년 12월엔 새천년민주당 정강(政綱)기초분과위 부위원장이었다. 2003년엔 민주당을 깨고 새 여당 열린우리당을 만든 분당 및 신당 창당의 주역이었다. 그가 어제 “민생개혁세력의 대통합신당을 추진하기 위해 당을 떠난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열린우리당 창당 3년 2개월 만이다. 그는 24일 “고산(高山) 정복의 꿈을 갖고 왔지만 조난을 당했다. 베이스캠프로 내려와 다시 정상에 오를 준비를 해야 한다”고 ‘회군론’을 펴며, 흩어졌다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재회(再會)할 것을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그의 탈당은 실정(失政) 책임을 회피하고 ‘정체(正體) 세탁’을 통해 정권을 되잡겠다는 대국민 사기극에 가깝다. 열린우리당 안에서조차 “그는 당 지지율이 43.5%이던 2004년 5월 원내대표를 맡았는데 6개월 뒤엔 지지율이 22.4%로 반 토막 났다. 배의 침몰에 책임져야 할 사람이 먼저 뛰어내리는 격”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그는 정동영, 신기남 전 의장과 함께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할 때 당이 청와대를 끌고 가야 한다는 ‘당(黨) 견인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원내대표가 된 뒤에는 ‘노무현 코드’에 따라가는 행보를 보였다. 특히 법무부 장관 때는 강정구 씨의 구속을 막기 위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수사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했다. 그 전에 그는 수사 지휘권 발동에 반대했던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장관에서 물러난 뒤 노 대통령의 부동산정책 등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리고 서울 여의도에 개인캠프를 차리고 대권도전을 준비해 왔다. 10월엔 목포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가 ‘목포의 눈물’을 부르기도 했다. ‘지역주의 극복’을 내걸고 민주당을 분당시킨 그인지라 표리부동(表裏不同)이 더욱 돋보였다. 그가 이번엔 열린우리당 분당극에 앞장서면서 민생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외친다. 국민 사이에선 “열린우리당이 갚겠다고 약속한 2002년 불법 대선자금 113억 원이나 다 처리한 뒤에 당을 해체하든지 하라”는 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