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반성의 계절

  • 입력 2006년 12월 19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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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현명하고 이성적이어도 집단이 돼 한데 모이게 되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집단은 종종 비이성적일 뿐 아니라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며 어리석기까지 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그렇다. 전교조는 교수 사회 다음으로 고학력 고두뇌 집단이지만 어쩌면 그토록 가지 말아야 할 데만 골라서 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4년 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 다수는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다. 당시엔 올바른 선택으로 여겨졌지만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결과는 참담하다.

정진화, 정연주, 노무현

전교조의 새 위원장에 선출된 정진화 씨가 ‘반성’의 뜻을 나타냈다. 그는 전교조가 고립되어 있다면서 투쟁보다는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전교조의 창립정신을 살려 참교육을 실천하겠다는 말도 곁들였다.

그의 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새로 잘해 보겠다는 뜻이야 물리칠 수 없겠지만 도통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전교조의 과거 행적에 따른 반작용일 터이다. 이익과 이념단체가 돼 버린 전교조가 집단의 속성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을 거두기 어렵다.

권력 진영의 한 축을 형성해 온 정연주 KBS 사장은 더 통렬히 반성했다. 그는 연임 사장으로 제청된 후 해인사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취임사에서 ‘대화와 소통이 없는 경직된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는지 깊은 성찰을 했으며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개혁을 하겠다’고 밝혔다. KBS를 권력에서부터 독립시키고 사회적 통합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그의 말은 직전까지 ‘코드 방송’을 총지휘했던 책임자로서 부끄러움을 망각한 얘기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KBS 사장 재도전기(記)’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3년 반을 KBS 사장으로 지내고도 자리 욕심이 채워지지 않았던 걸까. 정권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기 위해 수치심 따위는 훨훨 집어던진 걸까. 그의 탐욕은 이른바 ‘진보’ 세력에 대해 많은 사람이 환멸을 느끼게 만들었다. 좌파 쪽에서 보면 진영 전체에 상처를 입힌 격이다. 그의 말대로 공영방송의 독립성이 수호되고 ‘편 가르기’ 방송 대신 사회 통합에 나선다면 마다할 거야 없겠지만 말의 신뢰성은 크게 떨어진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편 가르기’에 대해 반성한 것은 ‘반성 시리즈’의 완결편쯤 될 것이다. 그는 7일 호주 동포와의 간담회에서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을 갈라놓고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았던 점을 국민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면서 “제 정치적 역량이 부족해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뤄 내지 못해 저도 대가를 톡톡히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편 가르기’는 생각 맞는 사람끼리 일하고 싶다는 ‘단순 분류’ 방식이 아니었다. 다수의 불만을 정권 지지를 얻어 내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의심을 샀던 방식이었다. 교육계의 한 인사는 “교육이 엉망이라고 하는데 지금처럼 교육계가 서로 으르렁대는 한 어떤 기상천외한 대책이 나와도 소용이 없다”고 전했다. 현 정권 아래서 공무원사회 언론계 학계 문화계 등이 다 이 모양이 됐다.

좌절 속에 생겨나는 희망

반성의 목소리가 부쩍 늘어난 것은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선거철이 다시 가까워 온 때문일까. 인간은 좌절을 몸으로 겪어야 지혜를 얻는다. 현 정권에 대한 낮은 지지도는 많은 국민이 4년 전 ‘집단선택의 실패’를 통해 뭔가를 깨달아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지혜가 축적될수록 ‘가짜 반성’은 설 자리를 잃어 갈 것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그래도 반성은 희망적인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희망은 길과 같다고 했다. 많은 사람이 오래 다니게 되면 없었던 길이 새로 생기는 것처럼 희망도 여러 사람이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 그 말을 믿고 싶다. 새해엔 정권의 ‘편 가르기’도, 교사들의 과격 투쟁도, 편파 방송도 없는 세상이 되기를.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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