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신욱]高利사채, 서민의 눈물

  • 입력 2006년 7월 24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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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1998년 1월 13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하에서 30년 이상 금융시장을 규제해 온 이자제한법을 폐지했다. 외환위기로 IMF의 긴급 지원을 받게 되면서 그들이 요구하는 고금리 정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결과다. 이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금융시장이 안정되면서 이자제한법의 제정 여부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 법무부는 고리의 사채에 시달리는 서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자제한법의 제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일부 사람은 계약자유의 원칙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는 것 같다. 반대론자들은 이자제한법의 제정이 서민들로 하여금 급전을 차용할 기회를 잃게 하여 오히려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마치 고율의 이자가 필요악인 것처럼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자제한법이 폐지되어 이자에 대한 법적 규제가 사라지자, 악덕 사채업자들은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서민을 상대로 고율의 이자를 약정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이자율이 연 200%가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폭리적인 고율의 이자로 고통받는 사람은 대부분 사회적, 경제적 약자인 서민이다. 이들은 고율의 이자를 물기 위해 또 다른 고율의 이자를 부담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 오죽하면 200%가 넘는 이자를 지불하면서 돈을 차용하겠는가?

고리의 사채업은 서민의 절박한 형편을 악용하는 사회의 암적 존재로서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사회악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자제한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반대론자들이 내세우는 계약자유의 원칙은 공공복리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 이자제한법의 제정이 오히려 서민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논리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영국에서는 대금업자법(Moneylenders Act), 소비자법(Consumer Act) 등의 특별법, 미국에서는 소규모 대부법(Small loan Act)이라는 연방법, 일본에서는 이식제한법으로 일정한 한도 이상의 이자를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 8월 26일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으나 등록한 대부업자가 개인 또는 일정한 소규모의 법인에 대부를 하는 경우 그 이자율을 제한할 뿐이지 무등록 사채업자를 규제하지는 않는다. 또 위 법률은 최고한도의 이자율을 연 70% 범위 이내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도록 하고, 이에 근거한 현행 대통령령은 최고한도의 이자율을 연 66%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연 66% 역시 사회적 상당성이 있는 합리적인 이자율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고율이다.

물론 이자제한법이 제정되지 않더라도 민법의 일반 법 원리에 의하여 폭리적인 고율의 이자를 어느 정도는 규제할 수 있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를 무효로 하고, 제104조는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을 근거로 불공정하거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폭리적인 고율의 이자 약정을 무효라고 선언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법의 위 규정을 적용할 때는 어느 선 이상의 이자 약정을 불공정하거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평가할 것인지, 그 경우 이자 약정 전체를 무효로 할 것인지, 아니면 불공정하거나 사회질서에 반하는 부분만 무효로 할 것인지, 채무자가 이미 변제했을 경우 무효인 부분의 이자반환 청구권을 인정할 것인지 등의 복잡한 문제를 따져야 한다. 또 민법이 무효로 하는 불공정 내지 반사회질서 행위는 범죄행위이거나 그에 가까운 행위이므로 민법의 위 규정만으로는 사회적 상당성이 없는 폭리적인 고율의 이자를 충분히 규제할 수 없다.

따라서 민법이 규정한 불공정 내지 반사회질서 행위로 평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사회적 상당성이 없는 일정 율 이상의 이자를 불법으로 선언할 필요가 있다. 명백히 사회적으로 암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폭리적인 고율의 이자를 법규로 규제하지 않고, 판례의 형성에 맡기는 것은 국가가 사회적, 경제적 정의를 구현할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강신욱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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