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찰의 위기, 치안의 위기

  • 입력 2006년 1월 27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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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 경찰이 흔들리고 있다. 사기가 떨어지고 기강도 무너졌다. 지난해 말 허준영 경찰청장이 시위농민 사망사건의 책임을 덮어쓰고 사퇴한 뒤 치안총수 공백이 길어지면서 증폭된 상황이다. 직무대리였던 최광식 경찰청 차장은 브로커 윤상림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수습은커녕 혼란만 키웠다. 그가 직위해제되면서 청장과 차장의 동시유고(有故)라는 경찰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서울경찰청장도 공석이다.

정부는 어제 차기 경찰청장 내정자인 이택순 경기경찰청장을 경찰청장 직무대리로 지명하는 응급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경찰조직의 정상화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이 청장 직무대리는 “산적한 현안 해결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는 말 그대로 ‘대리’에 불과하다. 지금으로서는 경찰청 후속 인사 등에서 실질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그는 주거지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지휘부의 장기 공백과 경찰조직의 혼란은 치안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 천안 시민들은 연쇄살인 공포에 떨고 있고, 부산의 한 장례식장에서는 폭력배 수십 명이 대낮에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렸다. 전국적으로 방화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한 전기회사 노조원 40여 명이 그제 정부청사 담을 넘어 외교통상부 현관을 점거한 사건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의 기강해이와 이에 따른 치안의 위기를 부채질한 것은 정부 여당이다. 노무현 정권은 불법 폭력시위를 없앨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일부 정파와 시민단체의 요구만 받아들여 경찰의 ‘과잉진압’ 책임을 묻기에 바빴다.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을 끌어들여 예산안과 부동산대책 관련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허 청장을 무리하게 압박해 사퇴시켰다. 경찰이 자신들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한 혼란에 빠지도록 몰아붙인 것이나 다름없다. 주눅이 든 경찰은 시위 진압에 나서는 전·의경에게 명찰을 달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경찰은 과연 선량한 국민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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