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뮤지컬 韓流를 위하여

  • 입력 2006년 1월 25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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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영화에 이어 뮤지컬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해 뮤지컬 관람객은 270만 명을 기록해 큰 호황을 누렸다. 뮤지컬의 총매출액은 음악 무용 등 나머지 공연물을 모두 합친 금액보다도 많았다.

뮤지컬의 ‘빅뱅’은 몇 년 사이 단숨에 이뤄진 것이라 더 놀랍다. 한국은 뮤지컬의 불모지대였다. 뮤지컬이 거의 공연되지 않는 데다 수준도 낮았다. 연극계의 취약한 여건 때문에 ‘한국에선 뮤지컬이 어렵다’는 회의론이 나왔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처음 본 뒤 한국은 언제 저런 공연을 해낼 수 있을까 낙담한 적이 있다.

뮤지컬의 급성장은 연극인들이 끊임없는 도전으로 이뤄 낸 결과다. 원초적인 가난함으로 인해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이 연극인이다. 강인한 생존 능력으로 뮤지컬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국내 뮤지컬의 불씨를 지핀 작품은 ‘명성황후’였다. 1995년 초연(初演) 때만 해도 성공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도박’이나 다름없던 이 작품이 한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하면서 뉴욕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자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높아졌다. 오랜 침체에 빠졌던 연극계가 마침내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 그 뒤를 따라 ‘오페라의 유령’ 같은 수입 뮤지컬이 들어와 본격적인 붐을 조성했다.

뮤지컬의 성공 비결을 설명하기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1930, 1940년대 국내 연극은 ‘악극’의 시대였다. 처음에는 연극의 중간 휴식시간에 관객들의 지루함을 덜어 주기 위해 노래와 춤, 재담을 섞은 ‘막간극’을 공연했는데 이것이 연극보다 더 인기를 모으자 독립시킨 것이었다. 10여 개의 악극단이 활동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뮤지컬이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자리 잡은 예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기본적으로 한국인 정서에 잘 맞는다는 얘기다. 인기에 힘입어 뮤지컬 지망생이 늘고 있다. 출연 배우를 뽑는 공개 오디션에 보통 500명씩 지원자들이 몰린다고 한다. 연기와 노래, 춤 실력을 함께 갖춘 배우들이 많아졌다. 한국 영화가 처음 붐을 일으켰을 때와 흡사한 상황이다.

뮤지컬은 영화와 함께 문화산업의 큰 축이다. 영국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세계적으로 80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지금까지 3조 원이 넘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오페라의 유령’을 포함해 ‘캣츠’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등 이른바 4대 뮤지컬이 총 10조 원의 흥행 수입을 기록 중이다.

영화에 비해 뮤지컬은 고가(高價), 고품질의 문화상품이므로 한국의 문화적 이미지를 고급화하는 데 적격이다. 국내 여건은 갖춰졌으므로 해외에서도 경쟁력 있는 문화산업으로 키울 방안을 찾아야 한다.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손으로 만든 창작 뮤지컬이 있어야 한다. ‘명성황후’를 제작한 연출가 윤호진 씨는 안중근 의사(義士)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만들어 4년 뒤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안 의사는 중국에서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으며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아시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영국이 만든 뮤지컬이 뉴욕 브로드웨이에 곧바로 수출되듯이 ‘명성황후’든 ‘안중근’이든 좋은 작품이면 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연극인들은 맨손으로 뮤지컬 전성시대를 열었다. 앞으로는 한국 무대를 뛰어넘고자 하는 야심 찬 연극인들이 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까지 연극인들이 보여 준 승부 근성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정부도 전용극장 등 뮤지컬 육성을 위한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뮤지컬 공연장의 뜨거운 분위기는 ‘뮤지컬 한류(韓流)’를 예감하게 한다. 세계 각국에서 롱런하며 흥행 기록을 경신하는 한국 뮤지컬을 보고 싶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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