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경제 살리기’ 낡은 레코드판

  • 입력 2005년 12월 20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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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與圈)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3주년을 맞아 그제 워크숍을 가졌다. 정권 4년차를 앞두고 국무총리, 열린우리당 의장, 대통령참모 등 핵심 인사들이 다 모였으니, 새해 국정의 밑그림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할 만했다. 이해찬 총리가 국정운영에 관해, 정세균 의장은 국회운영에 대해 기조발언을 했고 참석자들의 토론도 있었다. ‘경제 활성화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결의문’도 채택됐다.

그 내용을 여당 홈페이지에서 꺼내 읽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내년에도 이들에게서 희망을 보기 어렵겠구나. 국민 각자가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겠다.’

토론은 ‘열린’당 의원들조차 자유롭게 ‘참여’할 수 없는 ‘발언자 지명방식’이었고 “3년 동안 잘했다”는 자화자찬 말고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노 대통령은 하루 뒤인 어제 “열린우리당이 정치사에 새 지평을 열고 있다”고 화답했다.

재선거에 참패해 당정 간에 국정 책임론이 폭발했던 게 불과 50여 일 전이다. 노 대통령이 20%대로 떨어진 국정 지지도에 대해 “내가 천심이라고 읽어야 될 것 아닌가”고 말한 것도 넉 달이 채 안 된다. 집단건망증, 책임불감증이 빨라도 너무 빨리 왔다.

국민의 70% 이상이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정책들의 문제점을 찾아낼 능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실패했어도 무조건 잘했다고 우겨야 믿어 주는 국민도 생긴다고 계산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건 정권 4년차에도 교정(矯正)을 기대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친여 매체를 포함해 ‘당-정-청 결의문’을 요지나마 보도한 신문은 없다. ‘낡은 음반’ 틀어놓은 듯이 3년 전이나, 2년 전이나, 1년 전이나 변함없는 ‘약속의 나열’에 그쳤기 때문이다. 투자 활성화, 세계수준의 기업환경 만들기, 규제개혁, 성장동력산업과 중소기업 지원, 질 좋은 일자리 창출, 서민경제 활성화, 국가경쟁력 강화, 삶의 질 향상, 사회적 약자 지원….

당정 요인들은 자신들이 “경제 활성화와 양극화 해소를 제1의 국민적 명령으로 공동인식하고 총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외치기만 하면 국민도 조금은 감동할 것으로 봤을까. 하지만 과거엔 민주화세력이었는지 몰라도 지금은 이들이 가끔 쓰는 표현처럼 ‘크게 성공해 큰 승용차 타고 기름진 음식 잡숫는 분들’과 대다수 국민의 처지는 다르다. 서민일수록 1000원, 1만 원의 경제현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말이 아니라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오는 결과가 좋아야 믿는다. 3년간 균형, 형평, 분배, 복지를 강조했지만 정권 사람들의 정책코드 덕에 빈부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커졌음을 피부로 안다.

이 총리는 워크숍에서 “괜찮은 일자리 감소, 비정규직과 청년실업 증가, 자영업 과잉 등으로 인해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논평’했다. 그렇다면 그 선행원인을 없애는 것이 당정의 역할이다. 정 의장은 “우리 경제의 성숙단계 진입, 세계화 및 중국의 부상과 정보기술(IT) 등의 기술 진보 등으로 시작돼 내수 부진으로 더욱 심화됐다”고 선행원인을 설명했다. 줄기세포 논란의 핵심 인물들이 하는 말처럼 난해하고 헷갈리는 ‘해설’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괜찮은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는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게 주요인이다. 자영업자 과잉도 기업형 일자리가 적은 탓이다. 기업들이 노조 때문에 경영권 불안을 느끼고, 채용과 해고를 쉽게 못하니 정규직·신규 인력을 늘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을 풀어 주는 게 양극화를 줄이는 지름길이다. 정치적 수사(修辭)가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다.

경기침체도 소득격차의 큰 원인이다. 경기를 살려야 양극화도 완화된다. 적절한 경기부양에 실패해 놓고 “인위적인 경기부양책 없이 경제체질 개선을 통해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하고 지속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니, 말만 어렵다. 전국의 땅값 올려놓은 건 경제체질 개악이다.

기업과 기업인의 기(氣)를 살리고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으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것이 ‘양극화 해소’를 되뇌는 것보다 중산층과 서민 보호에 훨씬 효과적이다. ‘한나라당은 2%만 위하는 정당, 우리는 98%를 위한 정부’라고 아무리 선전해 봐야 거기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배인준 논설실장 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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