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양종구]월드컵 본선 ‘쉬운 팀’은 없다

  • 입력 2005년 12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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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월드컵 도전사를 보면 항상 첫 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한 ‘제물’은 있었다. 1986년 멕시코에서 불가리아(1-1), 1994년 미국에서 볼리비아(0-0), 1998년 프랑스에서 멕시코(1-3)가 대표적인 예.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한국은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비기거나 졌다.

1990년 이탈리아에선 벨기에(0-2), 스페인(1-3), 우루과이(0-1)의 세 팀과 모두 해볼 만하다고 평가했지만 전패를 하고 말았다.

2006 독일 월드컵 본선 조 추첨이 끝난 뒤 국내에선 또다시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프랑스 스위스 토고와 한 조가 된 것은 행운이라며 벌써부터 ‘16강 진출 청신호’, ‘8강도 가능’ 등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

4회 연속 월드컵 무대에서 뛰었던 홍명보 대표팀 코치는 “섣부른 예상이 경기를 망친 적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그는 그 예로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멕시코전을 들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과 전혀 달라 선수들이 당황했다”는 설명.

김병준(스포츠심리학) 인하대 교수는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예측하면 자만심을 키우거나 불안을 가중시킨다”고 말했다. 스위스와 토고가 약팀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팬들은 물론 선수들도 진짜 약팀으로 생각하고 얕볼 수 있다는 경고다. 홍 코치는 “선수들이 낙관적인 분위기에 휩쓸리면 그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고 거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만난 상대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면 선수들은 우왕좌왕하다 자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걱정이다.

그만큼 지나친 낙관론은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았던 이용수(세종대 교수) KBS 해설위원은 “월드컵은 실전이다.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분석에 따른 훈련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다”고 강조했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도 “상대적으로 좋은 조 편성이지만 얕볼 팀은 없다”며 “훈련으로 실력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월드컵이라는 축구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낙관적인 전망보다는 최악의 상황까지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월드컵 본선에 오른 팀 중에 약팀은 없다.

양종구 스포츠레저부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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