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25>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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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날 날이 저물기도 전에 다시 사람과 말이 함께 피 칠갑을 한 기마 한 필이 전횡의 진채로 뛰어들어 헐떡이며 말했다.

“전광 장군께서 한나라 장수 관영의 추격을 받아 사로잡혔습니다. 저만 간신히 에움을 빠져나와 이렇게 상국께 위급을 알립니다.”

하지만 그때는 전횡도 이미 어느 정도 분한(憤恨)을 털어내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였다.

‘제나라의 용장들이 모두 가는구나. 이미 사로잡혔다면 구차하게 항복하여 살아남을 광(田光)이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교동에는 기(田旣)가 있고 임치 쪽에는 허장(許章)이 있다. 또 준총(駿])같은 종실(宗室)의 호걸들과 허다한 산동(山東)의 지사들도 때가 되면 힘을 모아 일어날 것이다. 제나라가 결코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문득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든 장수를 군막으로 모으라. 한신과 결판을 내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래잖아 따르던 장수들이 모두 모이자 전횡이 비장한 어조로 그들에게 말했다.

“종형 담(田담)이 적현(狄縣) 현령을 때려죽이고 제나라를 되 일으킨 뒤로 이제 5년 남짓, 이 왕실의 명운이 기구하여 그 사이에 군왕이 바뀌기를 벌써 네 번이나 하였다. 처음 왕위에 오르신 담 종형이 임제(臨濟)에서 장함의 야습을 받아 돌아가시자 종질 불(田불)이 이었고, 불이 왕 노릇을 감당 못하고 죽자 항우 때문에 나누어진 삼제(三齊)를 다시 아우르신 우리 형님 영(田榮)이 왕위를 이었다. 그리고 다시 영 형님이 항우의 핍박을 받아 돌아가시자 내가 성양에서 일어나 조카 광(田廣)을 왕위에 올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방금 우리 대왕 광이 성양에서 장렬하게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왔다. 한신의 대군을 맞아 끝까지 싸우시다 성양 성벽을 베고 자결하셨다 한다.

이제 선왕을 위해 발상(發喪)하고, 전군을 들어 한군을 쳐부수어 그 한을 씻으려 하거니와, 그 전에 먼저 할 일은 끊어진 제나라의 왕통을 잇는 일이다. 하늘에 해가 없을 수 없듯이 나라에는 하루도 왕이 없을 수 없다. 마땅히 모든 종실을 모아 덕망 있고 공업이 높은 이를 왕으로 받들어야 하나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다. 부족한 대로 내가 왕위를 맡아 먼저 모질고 간교한 외적을 무찌른 뒤에 다시 우리 제나라 왕으로 합당한 이를 찾아보자.”

전담이 죽자 제나라 사람들이 옛 제왕(齊王)의 아우 전가(田假)를 왕으로 세운 일과 항우가 전가를 내쫓은 전영을 죽이고 다시 전가를 왕으로 세운 일을 더하면, 제나라는 매년 하나씩 왕이 서고 죽은 셈이었다. 그 한이 피맺히는 데다 전횡이 진정을 담아 하는 소리라 그런지 아무도 딴소리를 하는 장수가 없었다. 이에 전횡은 그날로 죽은 제왕 전광을 위해 발상하고, 스스로 제왕이 되어 선왕의 보수(報讐)와 설한(雪恨)을 맹서했다.

“먼저 박양으로 간다. 관영부터 쳐부수어 한신의 한 팔을 잘라 놓은 뒤에 다시 한신을 찾아 결판을 내자!”

다음 날 갑옷 투구로 몸을 가리고 스스로 앞장을 선 전횡은 그렇게 외치며 군사들을 이끌고 박양으로 달려갔다. 한번 관영에게 꺾인 군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1만 명이 넘는 제나라 군세였다. 그들을 휘몰아 박양에 이른 전횡은 성밖 벌판에 펼쳐진 관영의 진채를 다짜고짜로 들이쳤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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