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태원]사실로 밝혀진 ‘정권의 이중플레이’

  • 입력 2005년 11월 22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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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가 임동원,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해 검찰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기 하루 전인 13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을 방문한 것은 현 정권의 ‘이중 플레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 20일 “이 총리 측으로부터 급하게 연락이 와 두 분이 만나게 됐다”고만 설명했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이 총리가 김 전 대통령에게 두 전 국정원장의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를 대표하는 국무총리가 황급히 전직 대통령을 찾은 것은 그를 포함한 여권 핵심부가 검찰의 사전구속영장 청구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추론을 낳기에 충분하다.

검찰의 조치가 현 정권과 김대중 정권의 관계 및 호남지역 민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던 만큼 노무현 대통령도 이를 보고받았을 것이다. 결국 이 총리가 동교동을 방문한 것은 청와대와의 교감에 따른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다음 날인 15일 이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청와대는 이날 이병완 비서실장과 김병준 정책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나온 발언을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기자들에게 소개했다. “엄정하고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지만 불구속수사 원칙에 비춰 구속은 지나치다” “형평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는 등의 발언이었다.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 입장은 아니라면서도 이를 언론에 전한 것은 다분히 청와대의 강경한 기류가 보도되도록 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사전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미리 검찰로부터 보고받았다든지, 이에 관해 김 전 대통령 측의 양해를 구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여권은 고심 끝에 이 같은 이중 플레이를 했겠지만 결과적으론 국민을 상대로 ‘정치적 쇼’를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차라리 솔직하게 구속의 불가피성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더라면 적어도 당당하다는 평은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태원 정치부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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