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71년 탐험가 리빙스턴-스탠리 조우

입력 2005-11-10 03:02수정 2009-10-0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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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9년 10월 18일 파리 그랜드 호텔=뉴욕헤럴드 신문 발행인 제임스 고든 베넷과 신참기자 헨리 모턴 스탠리(1841∼1904)는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프리카 밀림에서 사라진 영국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스턴(1813∼1873)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를 찾아내게. 희대의 특종이 될 수 있어.”(베넷)

“죽었을지도 모르는데요.”(스탠리)

“그렇다면 해골이라고 찾아오게.”(베넷)

최초로 아프리카 대륙 횡단에 성공한 ‘스타’ 탐험가의 실종은 당시 최고의 기삿거리였다, 야망에 불타는 젊은 기자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리빙스턴 구하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1871년 5월 27일 콩고강 유역=스탠리의 구출작전을 알 리 없는 리빙스턴은 전설적인 나일 강의 원류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1865년 시작한 3차 탐험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식량은 떨어지고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외부세계와의 연락도 두절됐다. 이대로 가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1871년 11월 10일 탕가니카 호수 부근=1년 넘게 리빙스턴을 찾아 헤매던 스탠리는 탄자니아에 도착했다.

그는 호숫가에서 한 백인 노인을 발견했다. 비쩍 마르고 이가 모두 빠져버린 초라한 모습. 며칠 전 식량을 구하려고 이곳에 도착한 리빙스턴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검은 대륙’ 깊숙이 들어간 사람과 그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밀림 속 수천 km를 헤쳐 온 사람. 둘은 그렇게 극적으로 만났다.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Dr. Livingston, I presume)?”

극적인 조우(遭遇) 치고는 너무나 멋쩍은 인사말이었다. 그러나 이 한마디는 세계 탐험사에 길이 남는 명언이 됐다.

스탠리의 보급품 덕분에 목숨을 건진 리빙스턴은 함께 돌아가자는 간청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에 남았다. 2년 후 그는 잠비아 정글에서 이질로 숨을 거뒀다.

스탠리는 귀국 후 ‘나는 어떻게 리빙스턴을 찾았는가’라는 책을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러나 그는 아프리카를 잊을 수 없었다. 몇 년 후 저명한 아프리카 탐험가가 된 그는 부룬디 부근에서 나일 강의 수원을 찾아냈다. 오래 전 탕가니카 호숫가에서 만났던 그 노인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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