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쌍둥이 정치인

  • 입력 2005년 9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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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일이 뭐였나요?” 미국의 여성 앵커 코니 정이 생전의 말런 브랜도를 인터뷰했다. “태어나자마자 떨어져 자란 쌍둥이가 어른이 돼 만나 보니 똑같은 담배를 피우더랍니다.” 동문서답(東問西答)이 아니다. 브랜도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배우가 된 게 아니라 선천적 유전적으로 연기력을 타고났다는 말을 하려는 거였다.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가 같다. 따로 자란 쌍둥이가 동일한 취향을 보인다면 그건 환경 아닌 유전자 영향으로 봐야 한다. 학계에선 일란성 쌍둥이의 성격과 지능, 심지어 정치적 성향까지 비슷하다고 본다.

▷쌍둥이가 나란히 대통령과 총리를 차지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 폴란드에서 생길지 모른다. 25일 총선에서 제1당을 차지한 우파 ‘법과 정의당’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총리후보와 10월 9일 대통령선거를 앞둔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후보다. 45분 늦게 태어난 레흐의 뺨과 코에 점이 있다는 것 말고는, 학교 때 서로 대리시험 봤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닮았다. 완고하지만 정직하고,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며, 시장경제를 강조한다는 점도 같다. 외교경험이 부족한 점까지.

▷형제는 1980년대 자유노조 ‘연대’ 활동으로 폴란드 민주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1989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도 민주와 번영은 금방 오지 않았다. 여당인 민주좌파연합의 부패와 무능 때문에 고작 4%의 경제성장에 실업률은 17.9%까지 치솟았다. 대학졸업자도 패스트푸드점에 취직하면 다행일 정도였다. 카친스키 형제는 실업과 과도한 복지의 개혁을 내걸어 민심을 잡았다. 이들 우파의 성공에 대해 독일 슈피겔지는 “독일이 주저하며 못한 일을 폴란드가 해냈다”고 했다.

▷쌍둥이 대통령과 총리는 재미난 영화감이지만 폴란드인에겐 아닌 것 같다. 기질도 비슷한 쌍둥이가 동시에 정부를 이끄는 게 꺼림칙하다는 반응이다. 그럴 줄 알고 우애 깊은 형은 이미 “동생이 대통령 되면 나는 총리 안 한다”고 했다. 레흐가 대통령에 당선될지는 미지수지만 부패를 거부하고 경제를 선택한 폴란드의 앞길은 분명해 보인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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