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복거일]자본주의 허물기 위해 재벌 공격하나

  • 입력 2005년 9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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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재벌기업에 대한 공격이 부쩍 거세졌다. 정부와 좌파 시민단체들이 연합해서 재벌을 포위한 형국이다. 재벌의 처지는 무척 고단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사회적 악한’이 된 터라 일반 시민들의 지지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재벌의 잘못으로 꼽히는 사항들은 여럿이지만 ‘정경유착’은 늘 핵심적이다. 요즈음엔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들에게 자금을 불법으로 제공했다는 것에 공격의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나 재벌에 대한 공격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재벌에 대한 공격은 실질적으로는 성공한 기업들을 골라내서 벌하는 일이다. 지금 재벌로 불리는 기업들은 모두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성공한 기업들이다. 소비자들의 수요에 잘 부응해서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기업들을 벌하는 것은 사회의 활력을 앗는 길이다.

다음엔, 재벌에 대한 공격은 흔히 지나치게 높은 기준에 바탕을 두었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전반적으로 불투명해서 부패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는데, 유독 재벌기업에만 높은 도덕적, 법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다.

만일 재벌에 대한 공격이 위의 두 문제점들만 지녔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성공한 존재들은, 초강대국에서 초우량 기업에 이르기까지 질시와 증오를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재벌에 대한 공격은 전체주의 이념에서 나왔고 자본주의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고 필자는 의심한다. 재벌은 이를 위한 중간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는 재벌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지키려는 모든 시민의 문제다.

그런 관점에서 살피면, 재벌은 우리 체제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재벌기업은 나름의 약점들을 가지고 있어 권력에 아주 약하다. 정부와 좌파 시민단체들이 연합하면 재벌로선 자신을 방어하기가 무척 어렵다. 재벌의 큰 힘을 억제한다는 명분 아래 재벌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조치들이 이미 많이 나왔다. 그것은 곧 일반 시민들의 재산권 침해로 이어질 것이고 끝내는 자본주의의 기틀을 허물 것이다.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의 바탕이므로 시민들의 재산권이 침해되면 자유민주주의도 위협을 받을 것이다.

이런 사태는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났다. 1905년부터 1932년까지 일본은 ‘다이쇼(大正) 민본주의’라 불린 초보적 민주주의를 누렸다. 정치에서 정당들이 점점 더 큰 역할을 했고 의회의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는 관행이 마침내 정착되었다. 그러나 전체주의적 성향을 지닌 국수주의자들은 정당과 재벌을 일본의 적들로 여겼고, 일반 시민들도 재벌에 대한 반감이 컸다. 마침내 1930년부터 국수주의자들은 정치인과 기업가들을 암살하기 시작했다. 희생자들 속엔 미쓰이(三井) 재벌의 총수 단 다쿠마(團琢磨)가 포함돼 있었다. 그런 행동이 불러온 사회 불안으로 의회 정치는 끝났고 군부의 전체주의적 통치가 나왔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사회구조가 비슷하고 재벌의 역사와 성격도 비슷하다. 실은 재벌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유래했을 뿐 아니라, 우리 재벌기업들은 일본의 재벌기업들을 의식적으로 본받으면서 자라났다. 따라서 재벌에 관한 일본의 경험은 우리에게도 뜻을 지닌다.

이처럼 재벌이 전체주의 세력의 공격을 받는 것은 결코 재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우리 체제를 지키려는 일반 시민들은 재벌이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을 도와야 한다. 그것은 달갑지 않고 당장은 보답도 적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 없이 우리는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지킬 수 없다.

여기서 우리가 새길 것은, 통념과는 달리 재벌이 ‘좋은 기업 형태’라는 사실이다. 재벌은 우리 사회의 특수한 환경에 맞도록 진화했고, 지금 그보다 효율적인 기업 형태는 없다. 우리 경제는 거래 비용이 높고, 금융시장이 덜 발전되었고, 노동시장이 아주 경직되었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수출의 비중이 아주 크고, 위험한 사업들에 진출할 필요가 크다. 그런 환경에선 재벌이 아주 효율적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재벌은 압도적 기업 형태로 남을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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