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이해찬 총리의 ‘부동산 투자’

  • 입력 2005년 9월 21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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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라는 말이 있다. 투자(investment)와 투기(speculation)를 구분하기가 애매하다 보니 나온 우스개다.

사실 경제학에서는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가 이익 추구 행위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투기는 투자의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투자의 대상이 부동산이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부동산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한국 특유의 ‘국민정서’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부동산 투기의 정의를 굳이 요약하자면 ‘당장 필요하지 않은데 미래의 가치 상승을 바라고 사 놓는 행위’ 정도가 될 것이다.

이해찬(李海瓚) 총리는 추석 연휴 직전 자신의 땅 투기 의혹에 대해 “나는 그런 것(투기) 안 한다”고 일축했다. 필자는 이 말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이 총리 스스로 밝혔듯이 그가 1991년 1억8000만 원에 산 아파트는 14년이 지난 지금 2억7000만 원 정도 하는 서민 아파트다.

투기 의혹을 받는 대부도 땅 683평을 선의로 매입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3년 전 살 때보다 값이 배로 뛰었다지만 이 기간에 그 정도 오른 땅은 전국에 부지기수다. “서울서 견디기 답답하고 해서 농사를 지으려고 한 것”(15일 대한건설협회 주최 21세기 건설포럼 조찬간담회)이라는 말도 액면 그대로 믿어 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흔들리면 국민에게 혼돈을 주기 때문에 (부동산 대책을) 확고하게 처리하겠다”는 대목에선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다. 무슨 뜻인가.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거론하는 사람은 부동산 정책을 흔들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는 말 아닌가. 의혹을 물타기하는 수법의 교묘함에 기가 질린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동네 주부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는 화제에 올랐다고 한다. 이 총리는 섭섭하겠지만 주부들의 결론은 간단했다. 투기라는 것이다.

이 총리로선 억울할 것이다. 투기할 생각이 없었는데 투기라고 하니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올해만 해도 3명의 장관급 인사가 ‘억울하게’ 투기 의혹을 받고 물러났다. 현 정부가 투기꾼으로 몬 상당수 사람도 억울해 한다. 그분들은 투기를 했고 이 총리만 투자를 했다고 할 것인가.

그래도 승복할 수 없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면 된다. 이 총리는 대부도 땅이 당장 필요해서 샀는가. 동네 주부들은 이 질문 하나로 투기로 결론지었다고 한다. 주택을 2채만 가져도 투기로 간주한 8·31 부동산 대책도 실수요를 기준으로 투기 여부를 갈랐다.

농지 취득 자격을 따 내기 위해 농업 경력을 허위로 기재했다거나 제3자 임대는 위법이라는 사실을 굳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어느 경우에도 잣대는 동일해야 한다. 총리라 해서 느슨한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 “투기하려고 산 것은 아니지만 오해 소지가 있으니 팔겠다”고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면 될 일이었다. “나는 아파트 청약통장도 한번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해선 안 된다.

이 총리는 “부동산 투기는 사회적 암”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런 그마저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라는 식으로 행동한다면 누가 정부 정책을 믿겠는가.

김상영 경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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