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정치판 닮아가는 영화계

  • 입력 2005년 7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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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얘기를 할 때 많은 사람은 “정치판은…”이라고 말문을 연다. 노름판 싸움판처럼 정치권에도 ‘판’자를 붙여 낮추어 보거나 불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팽배하다.

최근에는 영화계를 부를 때도 ‘판’자를 붙이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충무로의 실력자’ 강우석 감독과 톱스타 최민식 송강호 씨가 배우 출연료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은 뒤 ‘영화판’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늘었다.

한국 정치권과 영화계의 최근 모습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힘 있는 몇몇 사람이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책임 떠넘기기가 횡행한다. 10년 가까이 정치권을 취재한 경험에 비춰 보면 당내 싸움이건 여야 대결이건 잘못을 흔쾌히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먼저 상대방의 잘못으로 몰아붙이다가 여론에 밀리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자들과 만나 상대방을 비판하는 얘기를 슬쩍 흘린 뒤 논란이 되면 사적인 자리에서 한 얘기였다고 발뺌하는 것도 흔한 수법이다.

강 감독도 정치권 사람들과 흡사했다. 그는 기자들과 만나 최민식 송강호 씨의 실명을 거론하며 톱스타들의 과도한 출연료 요구와 배우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들의 제작 지분 요구로 한국 영화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발언이 보도된 뒤 두 배우가 명예훼손이라고 반발하자 강 감독은 사과하고 진의가 왜곡됐다고 해명했다.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의 본질부터 차근차근 따져 가며 풀어야 할 사안을 정치권의 여론몰이식 행태로 해결하려다 분란을 일으킨 셈이다.

정치나 영화나 국민의 호응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국민이 외면하면 표를 얻을 수 없는 게 정치권의 선거다. 여야 대결도 결국은 국민의 여론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다. 지난해 17대 총선을 보면 한나라당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강수를 뒀고,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탄핵의 부당성을 공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결국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승리했으나 1년여가 지난 요즘 열린우리당의 지지도는 10%대로 급락했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고 돈을 많이 들인 블록버스터라 할지라도 관객들이 외면하면 극장에서 며칠을 버티지 못한다. 올해 상반기에 개봉한 한국 영화 30여 편 중 5편 남짓만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수십억 원대로 급증했으나 돈만 갖고는 안 된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인기가 중요하지만 대중에의 영합 또한 망하는 지름길이다. 정치권이나 영화계나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내 한발 앞서 나가야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이전투구를 되풀이하는 정치권보다는 영화계의 앞날이 그나마 밝은 편이다. 한국 영화는 국제영화제에서의 잇단 수상을 통해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국 영화가 흥행과 예술성을 모두 잡기 위해서는 영화인들이 정치판식 행태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 예술을 하는 영화계마저 정치판으로 바뀌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김차수 문화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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