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기춘]건강한 군대로 키우려면 투자를

  • 입력 2005년 6월 2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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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부대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참사가 온 국민에게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에 이어 내무반에서의 알몸 신고식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등 병영 내 인권문제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보도 등에 따르면 총기를 난사한 김모 일병은 평소 선후임 간의 인간관계나 의사소통에서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개인의 심리행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양록에는 자살이나 살해의도를 드러내는 극단적인 표현이 있었고, 내무생활에서도 선임병에 대한 반항행동이 감지됐다.

그럼에도 이를 방기한 것은 군 사고예방의 일차적인 여과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일탈 사병에 대한 기초적인 심리진단만 이뤄졌어도 이번 사고는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심리학과 군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의 경우 심리학은 병과 배치나 첨단무기 개발 외에 전투 훈련주기나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에 활용되는 등 전투력의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사기진작에 지배적인 행동과 판단의 규준이 돼 있다.

따라서 심리학자나 관련 전문가들이 군 조직의 정책 부서나 최일선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전투경험을 한 병사들이 각종 정신적 질환을 앓는 것을 본 미군은 해외주둔 병사의 정신건강을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정신과의사 심리학자 상담전문가 등을 배치한다.

또한 연방 정부가 후원하는 국립의과대학 심리학과에서는 군인들만을 상담 치료하기 위한 박사급 인력을 육성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학생들은 최소 5년 이상 ‘군인들의 마음’을 공부해야 한다.

이렇게 군사심리 분야에서 쌓인 지식은 산업이나 교육 등 비전투 분야에서도 널리 응용할 수 있을 정도로 활용도가 크다. 미국심리학회(APA)에서는 군사심리학이 55개 분과 중 19번째로 만들어졌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의 저명한 군사심리학 연구자인 에두아르도 살라스 교수는 “심리학적 분석은 군대가 가진 다양한 문제들에 ‘인과관계’에 근거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고 다가올 일들에 대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문제가 일어나도 그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찾지 못해 유사한 사건사고가 되풀이되는 우리 현실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 군도 군 인력의 심리학적 지식 습득과 응용 등 재교육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또 많은 군 관계자가 인간의 심리적 요인을 이해하는 것이 군 생활은 물론 전투력 증강에도 중요한 변수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군에서는 이러한 부담이 주로 현장에서 부하들과 같이 호흡하는 지휘관과 간부들에게 일임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군에 ‘사람’에 대한 전문가가 없으며 군에서 활동하는 민간 심리학자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군과 심리학계 사이에는 교육 이외의 부분에서는 교류가 많지 않다.

이는 모든 상황과 사건을 ‘내부의 한정된 자원과 능력’으로만 해결하려는 우리 군의 경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국군은 60만 명이 넘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다. 이러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에 대한 심층적인 고찰과 연구는 사고 예방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신뢰받는 병영’을 만들기 위한 중요한 투자이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사병 봉급을 올리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들었다. 봉급 인상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병영 내 인권의식이 제고돼야 하며, 부적응 병사를 미리미리 가려낼 뿐 아니라, 갈등을 완화하는 심리상담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한국의 위상에 맞는 일일 것이다.

남기춘 고려대 교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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