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영]금리는 성역인가

  • 입력 2005년 6월 2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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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초저금리 정책을 펴 온 결과 낮은 저축률, 경상수지 적자 확대, 부동산 가격 급등을 초래했다.”

한국의 얘기가 아니다. 모건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가 금리 인상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현재 연 3%인 미국 연방기금금리를 5%까지 올려야 한다고 말한다. 미 경기가 거품을 우려할 정도로 좋다는 말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저금리 상태에서 기업은 은행에서 돈을 싸게 빌려 투자를 늘리고, 소비자는 은행에 돈을 맡겨봐야 별 볼 일이 없으므로 소비를 늘린다고 나와 있다. 경기가 과열 조짐을 보이면 금리를 올려 반대로 간다.

그런데 요즘 한국 경제는 이상하다. 유례가 없는 저금리 상태를 유지하는데도 기업은 투자를 안 하고, 사람들은 소비를 늘리지 않는다.

기업은 돈을 빌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내부유보금을 잔뜩 쌓아놓고도 투자를 안 한다. 투자를 해봐야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서가 안 나오기 때문이다. 저금리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다.

민간소비는 더 심각하다. 저금리로 소비가 늘기는커녕 이자소득이 줄면서 오히려 소비를 줄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가처분소득이 거의 늘지 않은 데다 가계부채 문제까지 남아 있어 저금리라 해도 쓸 돈이 없다.

반면 저금리로 인한 부작용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부동산 값 급등이 대표적이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마이너스 금리 상태인 은행에 돈을 맡기기 싫고, 주식시장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뭉칫돈들이 대거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다. 정부는 일부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에 국한된 현상이라고 변명하지만 과거 경험을 되돌아봐도 부동산 값 폭등은 항상 돈 있는 계층이 일부 지역에서 촉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 얘기만 나오면 펄쩍 뛴다. 물론 내수경기가 가뜩이나 침체한 상태에서 금리를 올렸다가는 경기 회복이 아예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우려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냉정히 현 상황을 짚어보면 저금리로 인한 선순환은 없고 부정적 효과만 눈에 띈다.

사정이 이렇다면 교과서적 이론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다. 현실에서 통하지 않는 이론 때문에 금리는 절대 올릴 수 없다고 못 박아 둘 필요가 없다. 당장 금리를 인상하자는 게 아니다. 도대체 요즘 한국에서는 왜 경제학 이론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지 정밀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에 따라 올려야 한다면 올리자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은 이달 말 열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기금금리를 연 3.25%로 또다시 0.25%포인트 올릴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역전되면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도 있다.

현실 경제가 먼저 있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경제학 이론이 생긴 것이다. 그 이론에 맞추기 위해 경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론은 현실이 변하면 바뀔 수 있지만 현실은 지금 당장 풀어야 할 숙제다.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정책 입안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는 사고의 유연성인지도 모른다.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금리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기를 기대한다.

김상영 경제부장 you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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