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트위스트 金의 눈물

  • 입력 2005년 6월 17일 03시 21분


코멘트
같은 전쟁영화라도 ‘트로이’의 전투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낭만적이다. 칼은 팔의 연장이다. 적장(敵將)의 상태가 어떤지 장수는 칼끝만 부딪쳐 봐도 안다. 이에 비하면 총은 좀 멀다. 총알이 적의 몸을 뚫는 충격을 이쪽에선 느낄 수 없다. TV로 생중계됐던 걸프전과 이라크전은 아예 컴퓨터게임 같았다. 대면(對面) 접촉 없이 공격 가능한 테크놀로지가 발전할수록 대량살상도, 인간의 잔인성도 증가하는 건가.

▷핵폭탄만 대량살상무기가 아니다. 보통사람에겐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구설수(口舌數)만큼 겁나는 무기도 드물다. 특히 컴퓨터로 순식간에 퍼지는 인터넷 구설수는 사이버 대량살상무기나 다름없다.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렸다가 ‘개똥녀’로 낙인찍힌 여성의 영상및 기사엔 3만 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도둑으로 몰린 여고생이 자살하자 가해 학생들의 이름과 사진이 인터넷에 떠다녀 이들은 전학도 못 갈 상황이 됐다.

▷군중의 익명성(匿名性)과 사이버 공간의 익면성(匿面性) 속에선 멀쩡한 사람도 ‘테크노 폭민(暴民)’으로 변신한다. 언어적 공격행동, 즉 욕설은 하면 할수록 공격성이 높아져 인터넷이 추악한 전쟁터가 돼 버린다. 상대에게 죄가 있든 없든, 일단 공격을 시작하면 적개심이 더욱 증폭돼 무차별로 공격성을 발휘한다는 인간심리가 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도 없다.

▷1960년대 영화 ‘맨발의 청춘’에서 트위스트 춤으로 사랑 받았던 노배우 트위스트 김(본명 김한섭)이 사이버테러 때문에 자살기도까지 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예인(藝人)에게 예명이란 본명보다 큰 의미가 있다. 그 예명이 불법 성인사이트 제목이나 인터넷 주소로 쓰여 손녀딸이 놀림당하고 아내는 우울증에 걸렸다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사법기관은 애매한 법률 뒤에 손놓고 있어선 안 된다. 누리꾼(네티즌)도 정신 차릴 때가 됐다. 더는 인터넷 명예살인이 일어나지 않게 자발적 인터넷 양심운동이라도 펼쳐야 한다.

김 순 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