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TV의 두 얼굴

  • 입력 2005년 6월 11일 03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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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안보기 운동’이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TV를 끄면 대화하고 독서하고 사색할 시간이 늘어난다고 강조한다. 우리 집에서도 여섯 살짜리 막내가 케이블TV의 만화채널을 너무 많이 봐 케이블을 끊었더니 대화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미 TV에 중독돼 있어 TV 끄기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요즘 TV를 보다 보면 TV 끄기 운동에 공감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가족 간의 대화와 화목에 도움을 주는 것도 있다. TV의 두 얼굴인 셈이다.

가끔 식구들과 함께 KBS 2TV의 ‘스펀지’를 보면서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상식의 허를 찌르는 문제를 낸 뒤 출연자들이 정답을 유추하고 실험과 현장검증을 통해 정답을 확인하는 형식부터가 신선했다. 4일 출제된 문제는 ‘조선시대에는 로 만든 갑옷이 있었다’ ‘거미는 면 공격한다’ 등이었다. 정답 ‘종이’와 ‘소리를 내’를 확인하고 무릎을 쳤다.

‘스펀지’에서 출제됐던 문제는 ‘스펀지’라는 책으로 출간돼 인기를 끌고 있다. 2월 이후 두 권이 출간됐는데 이미 20만 부 이상 팔렸다. 영상과 문자의 행복한 만남이 독서에까지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MBC의 주말 오락프로그램 ‘느낌표’의 ‘눈을 떠요’ 코너도 가족의 소중함과 이웃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내용이어서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반면 일부 시사 및 비평 프로그램을 보면 TV를 꺼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방송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벗어난 내용이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KBS 1TV의 ‘미디어 포커스’나 MBC의 ‘뉴스플러스 암니옴니’가 특히 그렇다. 두 프로그램이 주로 동아일보를 비롯한 주요 신문을 비판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들은 무오류의 심판자인 듯한 태도 자체가 못마땅하다. 이른바 현 정부의 ‘코드’에 맞춰 국민을 설득하고 교육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불쾌감이 들기도 한다.

두 프로그램은 지난주 세계신문협회(WAN) 서울총회에 관한 주요 신문의 보도 태도를 집중 비판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외눈박이 공격’에 그쳤다. 언론 자유 측면에서 신문법이 갖고 있는 독소조항은 무시한 채, 주요 신문이 자사 이기주의에 따라 WAN 회장의 신문법 관련 발언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미디어 포커스’와 ‘뉴스플러스 암니옴니’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비평 대상도 문제다. 각종 조사 결과, 신문보다 방송의 여론 독점이 훨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도 두 프로그램은 주로 신문 보도를 겨냥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사의 잘못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오락 프로그램 때문에 TV가 ‘바보상자’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시청자 수준을 얕잡아 보는 시사 비평 프로그램이 문제다.

KBS 공채 1기로 32년째 KBS에 몸담고 있는 강동순 상임감사는 최근 “공영방송은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고 국민의 선택을 유도하는 중립적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얘기다.

김차수 문화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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