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진경]‘성매매 여성 대책’ 당정 엇박자

  • 입력 2005년 3월 31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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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집창촌 화재 사고와 관련한 당정회의 직후 열린우리당 조배숙(趙培淑) 의원은 ‘성매매 집결지 폐쇄 및 정비에 관한 법률’을 제정키로 당정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조 의원은 “집창촌 폐쇄는 우리당의 총선 공약이자 당론”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여성부는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이인식(李仁植) 기획관리실장은 “내부적으로 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정회의 자료를 만들고 외부에 유출되면 안 된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며 “그 자료는 실무자가 만든 초안”이라고 해명했다. 해당 공무원도 “그 법안의 내용이 당정회의에 올라갔는지도 몰랐다”고 실토했다.

여성부는 이날 조 의원의 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집창촌 성매매 여성을 위한 시범사업 확대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탈(脫)성매매 여성의 생계비 지원을 20만 원 인상하는 방안도 다른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바로 이런 공방이 벌어지는 순간 장하진(張夏眞) 장관은 화재 사고 희생자를 조문하고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성매매 여성 송모(29) 씨를 만나고 있었다. 장 장관은 병원을 방문하고 화재 사고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을 만나느라 문제의 법안을 검토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장관은 이날 그동안의 자활대책이 형식적이어서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날 발언은 이 대책을 만든 전임 장관을 비난하는 듯이 들리기도 했다.

장 장관이 화재 사고를 계기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수습 노력을 한 데 대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크게 칭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장 장관은 이렇게 현장을 쫓아다니다가 정작 성매매 여성 대책을 검토하지 못했고, 이런 와중에 설익은 대책이 당에서 먼저 터져 나온 것이다.

장 장관의 현장 중심 행보는 성매매 여성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관의 역할이 성매매 여성들과 일일이 접촉해 ‘그 일’을 그만두도록 설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장관이 해야 할 일은 성매매 여성들이 그 일을 그만두고도 살 수 있다고 믿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

김진경 교육생활부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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