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연욱]빅딜說에 실종된 ‘상생 정치’

  • 입력 2005년 3월 6일 18시 23분


‘빅딜설’의 끝은 송사(訟事)였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5일 열린우리당 정세균(丁世均) 원내대표가 근거 없는 빅딜설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5억 원의 민형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로 했다.

빅딜설의 발단은 정 원내대표가 3일 기자간담회에서 “행정도시법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 과거사법의 처리를 연기해 달라는 한나라당(지도부)의 요청을 수락했다”고 말한 것이었다.

정 원내대표의 발언이 전해지자 한나라당 지도부는 행정도시법 처리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맹비난에 부닥쳤다. 과거사법 연기를 위해 행정도시법을 ‘빅딜’한 게 아니냐는 항의가 빗발쳤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는 즉각 “그런 일은 전혀 없다”며 파문 진화에 나섰으나 결국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빅딜설 자체는 입증할 만한 뚜렷한 물증이 없어 다소 부풀려졌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하지만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할 때 양당 지도부의 대응은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우선 정 원내대표는 좀 더 자신의 발언에 신중했어야 했다. 이미 빅딜설이 국회 주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상황에서 나온 그의 발언은 ‘불난 데 기름 부은 격’이 돼 버렸다.

국회 신행정수도 특위 소위원장인 같은 당의 박병석(朴炳錫) 의원이 4일 기자들과 만나 “정부와 여당은 특별법(행정도시법)통과를 위해 많은 것을 고려했다”고 한 발언도 오해의 불씨를 남겼다.

정 원내대표는 6일 박 대표의 소송 제기에 대해 “행정도시법을 흠집 내고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을 밖으로 돌려 해소하려는 얄팍한 술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가 박 대표의 소송 제기에 앞서 좀 더 진솔한 해명을 했는지 돌아볼 일이다.

결국 소송에 호소한 박 대표의 행동에 대해서는 당 내에서도 “정치권이 스스로의 영역을 포기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여야는 새해 들어 ‘상생(相生)의 정치’를 거듭 국민에게 약속했다. 하지만 상생의 정치는 화려한 수사(修辭)보다 구체적인 실천이 중요하다. 여야 지도부가 국회가 아닌 법정에서 만나는 모습은 정치력 부재 시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정연욱 정치부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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