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 식도락은 예술이다

  • 입력 2004년 11월 26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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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의 그림 ‘바쿠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바쿠스가 술잔을 손에 쥔 채 과일이 가득한 테이블 뒤에 앉아 있다. 브리야 사바랭은 숨지기 전해인 1825년 ‘미식 예찬’을 익명으로 펴냈으나 오래잖아 파리 사교계에선 그가 지은이라는 사실이 퍼져 나갔다. -사진제공 르네상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의 그림 ‘바쿠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바쿠스가 술잔을 손에 쥔 채 과일이 가득한 테이블 뒤에 앉아 있다. 브리야 사바랭은 숨지기 전해인 1825년 ‘미식 예찬’을 익명으로 펴냈으나 오래잖아 파리 사교계에선 그가 지은이라는 사실이 퍼져 나갔다. -사진제공 르네상스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 지음 홍서연 옮김/580쪽 2만5000원 르네상스

이 책을 ‘미식과 식도락(食道樂)의 경전’이라고 부르면 어떨는지.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하다. 엄청난 대식가였던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발자크는 이 책을 모델로 ‘결혼의 생리학’이란 작품을 썼고, 역시 프랑스 소설가로 ‘요리 대사전’을 썼던 알렉상드르 뒤마는 브리야 사바랭(1755∼1826)을 미식 담론의 원조로 받들었다.

이 책은 식도락 분야의 고전이다. 1825년 프랑스에서 나왔는데 오늘날까지도 미식 관련 글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고 있다. 원제는 ‘미각의 생리학’인데, 생리학은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유행하던 학문이었다. 브리야 사바랭은 원래 ‘미식 성찰’이라는 제목을 달려고 했지만, 그게 더 적절한 것 같다.

이 책은 방대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씌어졌다. 주제도 미식(美食)에 관련된 온갖 영역을 두루 다루고 있다. 미식법과 미식가, 갖가지 음식, 식사의 쾌락, 소화와 휴식, 갈증과 음료, 비만과 살이 빠지는 현상, 그에 대한 치료법, 요리의 철학적 역사 등 큰 주제만 봐도 흥미롭다.

이 책을 가장 맛있게 음미하려면 우선 식욕촉진제 격으로 앞부분의 ‘잠언’을 읽을 필요가 있다. 군침 도는 내용이 많다. ‘음식은 기름진 것에서 시작해 가벼운 것으로, 음료는 순한 것에서 시작해 화끈한 것으로 끝낸다.’ ‘당신이 먹은 것이 무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치즈 없는 후식은 애꾸눈 미녀와 같다.’

이 책의 주된 요리랄 수 있는 ‘성찰’은 다채롭고 흥미롭다. 가령 ‘미식법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한 이런 대목 같은 것이다. “사업가들은 식사를 통해 회식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로부터 정치적 미식법이 탄생했다. 식사는 통치수단이 되었고, 나라의 운명은 연회에서 결정됐다. 헤로도토스 이래 모든 역사책을 열어 보면, 심지어 모반까지 연회 중에 계획됐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커피에 대해선 이렇게 말한다. “볼테르와 뷔퐁은 커피를 많이 마셨다. 그들의 저작에 드러나는 놀랄 만한 명석함, 문체에서 보이는 열광적인 조화는 커피 덕분일 것이다.…하지만 세계의 모든 부모는 아이들에게 커피를 금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스무 살에 오그라지고 늙은 기계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브리야 사바랭은 ‘미식이 부부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충고한다. “미식가 부부는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서로 화합할 즐거운 기회를 갖는다. 왜냐하면 심지어 따로 자는 부부도(이런 사람들이 많다) 식사는 어쨌든 한식탁에서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대화 주제가 있다. 함께하는 식사에서 지키는 예절은 많은 이들에게 삶의 행복이다.”

이 밖에 별식(別食)과도 같은 글 모음들까지 읽고 난 느낌은 잘 차려진 식사에서 얻는 포만감과 비슷하다. 브리야 사바랭은 법률가, 정치가이면서 미식가였다. 그는 출간 당시에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 책을 통해 요리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과학이라는 새로운 생각을 표방했다.

‘미식 문학’의 원조로 꼽히는 이 책은 프랑스가 미식의 천국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

손일영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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