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태근]흙이 생명이다

  • 입력 2004년 11월 22일 18시 20분


코멘트
겨울로 가는 길목, 유난히 안개가 잦다. 파란 하늘이 점심때가 거의 돼서야 나타난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하늘은 예전의 맑고 높고 파랗던 그 하늘이 아니다. 산업 발전과 도시화로 많은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환경은 날로 어렵고 힘든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 대륙에서 몰려오는 황사와 산성비로 인해 하늘에서 내리는 비조차 바로 맞을 상황이 아니다. 계절답지 않은 날씨도 결국 인간이 편리함만을 좇아 마구 쓰고 함부로 버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때문에 돌아갈 고향 같은 흙에 대해 누구나 소중한 마음을 가져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신발에 흙 묻힐 기회조차 없을 정도로 온통 아스팔트 세상이다. 흙 한줌 보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아스팔트를 쏟아붓는다. 시골도 시멘트를 마구 쏟아부어 골목마다 흙을 만나기 힘들다. 고무신 신고 돌아다니며, 냇가에서 물장구치고, 진달래 개나리 어우러진 산골과 들판을 뛰어놀 만한 기회가 지금의 아이들에겐 거의 없다.

우리의 먹을거리는 흙 속에 살아 숨쉬는 수많은 미생물과 작은 동물의 조화 속에서 생겨난다. 농부들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 땅을 관리하는 관리자요 매개자다. 농부들이 없다면 사람들이 먹을 식량과 식품이 그저 땅 속으로 들어갈 뿐이다. 흙을 지키고 흙 속에서 인간적인 삶을 추구하며 농촌을 지키는 일, 먹을거리를 지키는 일이 매우 소중한 일이고 시급한 일인데도 우리의 농촌은 텅 빈 곳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 몸에도 분명 나름대로의 기운이 흐르고 있다. 우리가 그 고마움을 잊고 사는 땅과 흙에도 나름의 기가 있음을 우리 선조들은 경험으로 알고, 자연의 기가 모인 세상을 존중하며 살아왔다. 작은 흙의 목소리를 듣고, 자연의 기를 느끼며 살았기에 비록 물질적으로는 곤궁했는지 몰라도 우리 조상들의 정신문화는 고귀한 것들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선조들이 고이 간직해 온 땅과 흙의 건강한 기를 지금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손가락 발가락에 흙 한 줌 묻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균형을 깨버린 생태계 속에서 우린 안개처럼 떠돌며 살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이민, 자살률, 이혼율의 급등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도 따지고 보면 쉬 달고 쉬 식는 아스팔트 같은 현대인의 마음에 원인이 있다. 곧 나타날 자연재해의 심각성도 다 흙을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 대책 없이 먹고 사는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선진 공업화의 이점을 말하면서 우리의 삶을 담는 가장 중요한 흙을 마구 짓밟고 있다. 땅에서 엎어지면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데 발 디딜 땅조차 건강하지 않다면 어딜 의지하며 일어서야 할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물 맑고 공기 맑던 그 시절, 우리의 몸속에서 꿈틀대던 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땅을 살려야 한다. 다시 흙의 건강한 냄새, 건강한 자연의 기를 우리의 온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흙을 살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생명을 살리는 길이다. 우선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버리고, 아주 필요한 만큼만 갖는 소박한 자기 노력이 먼저임을 깨달아야 한다. 쉬 걷히지 않는 안개를 보고 있노라니 저 안개 너머 기상재해, 환경재해의 마군이 무섭게 우릴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다.

이태근 환경농업단체연합회 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