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美CBS 안락사 장면 방영

  • 입력 2004년 11월 21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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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22일 ‘루게릭병’ 말기 환자인 토머스 유크(당시 52세)가 독극물 주사를 맞고 숨지는 안락사 장면이 미국 CBS방송 시사프로그램 ‘60분’을 통해 방영됐다.

잭 케보키언(당시 69세)이 독극물 주사를 놓는 것에 동의한다고 말한 유크씨의 팔에 주사가 놓아지고 천천히 숨이 멎는 장면이었다.

루게릭병 환자는 대부분 운동신경 세포가 마비돼 근육이 위축되다 발병 후 3∼5년 만에 죽는다. 안락사 옹호론자인 케보키언씨는 이 장면을 그 해 9월 17일 비디오로 찍었다.

이 장면이 방영되자 안락사 논쟁뿐 아니라 언론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CBS는 “어렵고 중대한 이슈에 대해 논쟁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이 고민하게 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역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리치, ABC방송 저녁 뉴스 앵커 피터 제닝스 등은 이 방송을 지지했다.

그러나 가톨릭 디트로이트 교구는 “다음에는 여러 명의 환자를 동시에 숨지게 하는 ‘집단 안락사’도 방영할 것인가”라며 “언론이 지켜야 할 사회적 책임을 버리고 시청률만 올리려는 선정적인 방송”이라고 비난했다.

미국 지역신문인 볼티모어 선도 “유크씨는 실험 대상처럼 보였다”며 방송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한 시민단체는 문화를 오염시켰다는 뜻에서 CBS를 ‘하수구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CBS가 방송 제작의 ‘기본’을 결여하고 프로그램을 ‘가볍게’ 제작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USA 투데이는 “안락사의 윤리적 문제, 죽음 외에 고통을 줄이는 방법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며 “케보키언씨가 어떤 사람인지, (안락사가 정당화될 수 있는) ‘치명적 상태’가 무엇인지 등은 취재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케보키언씨는 99년 3월 유죄(2급 살인)가 확정돼 현재까지 복역하고 있다. 그는 90년 이후 불치병 환자 약 130명의 안락사를 도와 이전에도 네 차례 기소됐지만 법정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이전 환자들은 그가 고안한 ‘자살기계’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유크사건과 달리 ‘살해’가 아닌 ‘자살’로도 볼 수 있었던 것. 케보키언씨의 의사 면허는 1991년 취소됐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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