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김영봉]신문을 불사르자는 것인가

  • 입력 2004년 11월 18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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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맨(fireman) 몬태그는 책을 수색해 불사르는 일을 한다. 그가 사는 사회에서는 인간의 생각을 막기 위한 모든 장치가 구비돼 있다. 자동차는 고속으로만 달리도록 규제돼 도로변의 광고판도 모두 초대형이다. TV 프로그램은 시청자를 배역으로 참여시켜 가상세계에 빠지게 하므로 이에 중독된 일반 시민의 꿈은 거실 4면 벽을 가능한 한 초대형 TV 화면으로 채우는 것이다.

▼소설 ‘화씨451도’의 책 태우기▼

어느 날 그는 16세 소녀 클라리스를 만나 생각을 시작하게 된다. 자기 직업이 과거에 불을 지르는 게 아니라 끄는 일이었음을 알고 놀라고, 그의 직업과 사회의 가치에 대해 회의를 가진다. 그는 수색한 책을 감추기 시작하다가 당국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종국에는 자유사상이 허락되는 뒷날을 위해 사라져 가는 책을 머리에 암기하는 지식인 집단에 합류한다.

1951년 레이 브래드베리가 쓰고 1967년 영화로도 나온 작품 ‘화씨 451도’의 내용이다. 이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작품’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욕보이기 위해 만든 삼류 선동물 ‘화씨 9/11’ 때문에 알려진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화씨 451도는 책(종이)이 점화되는 온도인데 마이클 무어 감독은 화씨 9/11이 가당치 않게 ‘진실’이 타는 온도라고 하니 어이없는 일이다.

오늘날 방송과 인터넷이 사회 여론의 주도 매체로 등장한 상황은 브래드베리가 상상한 반(反)유토피아 세계를 연상시켜 섬뜩하다. 화면은 인쇄물보다 오래 기억되지 않고 그때의 감(感)을 주로 간직한다. 특히 방송은 선택된 화면 처리와 격앙된 보도를 통해 한편을 악의 세력으로, 다른 한편을 정의의 사도로 꾸밀 수 있는데, 바로 지난 탄핵방송 때 극명히 드러난 수법이다. 깨어 있는 국민이 아니라면 조작과 선전에 능한 자들에게 농락당하기 쉬운 사회일 것이다.

반면 6하(何)를 꼬박꼬박 넣어야 하는 신문지면은 되풀이해 보며 음미할 수 있기 때문에 정연한 논리와 분석이 아니면 당장 신뢰를 잃는다. 정돈된 문장과 행간에 의미가 실리므로 머리를 쓰지 않는 인간은 즐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신문을 격하시킴은 사회 수준을 격하시키는 것이다. 국민을 기만하고자 하는 세력이라면 당연히 통제하고픈 욕망이 일어날 것이다.

정부는 각종 신문규제를 법으로 통과시키고 주요 신문의 독자를 제한할 예정이다. 방송과 달리 스스로 돈을 내 신문을 선택한 독자에게 정권은 마치 그들이 일부 언론사의 사기에 넘어간 듯, 그들을 언론의 횡포에서 구해 주는 조치인 듯 호도한다. 그러나 신문 독자를 어떻게 보고 이런 언어도단을 하는가. 이를 제안하는 집단들은 과거 책략, 조작과 선동을 일삼고 초점을 흐리고 기만하고 호도하는 재주를 보여 왔다. 만약 비판 신문이 없다면 모든 사람은 이런 선전을 ‘생각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종국에 반세기 전 브래드베리가 예언한 우중(愚衆)을 통제하는 일당 장기집권 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유세계에 유례 없는 신문시장 재편을 도모하며 정부는 이것이 공공성 있는 사업이라 규제한다고 한다. 그러나 공공성의 잣대라면 방송이 우선이다. 방송이야말로 공공매체인데 현재 정부의 입노릇만 하고 시청료 납부를 강제한다. 그러나 정부가 그렇게 다양한 의견에 몰두한다고 하니 국민이 특정방송을 편식 못하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KBS MBC의 청취율이 각자 30%가 넘지 못하도록 TV채널을 특별제작하든, 시청료 징수를 제한하든 제재해야 한다.

▼신문통제는 독자의식 통제▼

정부가 예정대로 3대 신문의 구독률을 제한하면 다른 신문들은 이 정책의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한 달 전 수혜자가 될 신문 중 하나인 M신문이 논설한 바를 보자.

“신문시장에 대한 인위적 조정으로 인해 여론시장이 왜곡되면…결과적으로 신문 전체의 비판기능이 상실돼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마침내 전 신문시장이 황폐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스스로의 이익을 외면하고 정도의 논설을 펴는 이런 신문에서 어떤 정략에도 썩지 않을 신문의 언론기능을 볼 수 있다.

김영봉 객원논설위원·중앙대 교수·경제학 kimyb@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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