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경숙]만나서 희망을 긷자

  • 입력 2004년 9월 25일 16시 40분


추석을 앞두고 여당의 대표가 서울 남대문시장에 들렀다가 상인들에게서 푸대접을 받은 기사를 읽는 마음은 착잡하다. 특별한 원한관계가 아니면 찾아온 사람을 두고 ‘왜 왔느냐?’라고는 하지 않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이다. 마음으로야 어찌 생각하든 찾아온 사람에겐 밥은 챙겨 먹여서 보내야 도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거나 누군가가 방문하면 무의식중에 ‘점심은?’, ‘저녁은?’이라고 묻게 되는 연유의 한 뿌리도 거기에 대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인들의 ‘장사도 안 되는데 여기는 왜 왔느냐’라는 말은 그냥 흘려들을 말이 아니다. 명절을 앞두고 찾아온 사람에게 뒤에서 ‘소금 뿌려라’ 할 정도면 경기침체로 바닥인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명절에 지역구를 찾아가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걱정들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런 푸대접이 비단 남대문시장을 찾아간 여당 대표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의사소통 막는 국론분열▼

그러나 비단 경제 문제만으로 이렇듯 인심이 냉정해진 걸까. 물론 그것이 출발이긴 할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은 마음속에는 어떤 문제에서든 속 시원한 꼴을 볼 수 없이 국론이 점점 분열되어 가는 것에 대한 불신이 불러일으킨 여파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이토록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한 나라에서 한 국민으로 살고 있는 거지?’ 싶을 정도로 모든 문제에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생각들이 갈라져 있다. 어떻게 이리 되었을까. 어떤 기준을 갖다 댄다 해도 1970년대보다는 1980년대가, 1980년대보다는 1990년대가, 그리고 1990년대보다는 2000년대가 따질 것도 없이 사회 상황은 더욱 민주화되어 왔는데 작금의 분위기는 왜 이러한지 참으로 아득한 생각이 든다.

국론분열의 사회분위기는 개인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끼리 소통을 하려면 맨 먼저는 서로 대화의 기회를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답답한 건 생각이 너무나 달라서 과연 그 대화의 장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여간해선 속에 있는 깊이 있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특히 생각이 다르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겉만 빙빙 도는 인사치레의 얘기를 하다 만다. 항간에 떠도는 싱거운 유머가 그런 때에 분위기 전환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웃는 얼굴로 만났다가 그나마 그런대로 헤어지려면 그것이 최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과 같은 생각, 말하자면 내 편이라고 확실하게 여겨지는 대상에게만 자기 생각을 말하게 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최소한의 소통의 기점을 찾아낼 수가 없다. 생각이 다른 상대의 말은 전혀 듣지도 수용하지도 않겠다는 상황 속에선 성숙한 대화는 진행될 수가 없다. 더구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상대를 백번 무찔러 봐야 허무한 일일 뿐이다.

▼대화가 풍성한 한가위 되길▼

추석을 맞이하여 올해도 어김없이 헤아릴 수 없는 귀성 인파가 고향을 찾아간다. 경제 사정은 그리 좋지 않다고 하는데도, 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더 고향 생각이 나는 것인지 올해의 귀성 인파도 여느 해 못지않다고 한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우리 민족의 명절을 맞이하는 마음은 확실히 다르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주차장이 되어 버리는 도로를 뚫고 열몇 시간 만에 또는 거의 하루 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마음엔 여유가 있고 대화가 있으며 만남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말이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각계의 대화만이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는 때다. 어떤 만남이든 간에 소통을 위한 다양한 대화가 푸짐하게 이루어지는 명절이었으면 한다.

신경숙 소설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