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3년 로젠버그 부부 처형

  • 입력 2004년 6월 18일 19시 47분


코멘트
1949년 8월 옛소련이 원폭(原爆) 실험에 성공하자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 사막에서 죽음의 불기둥이 솟구친 지 4년 만에 미국의 ‘핵 독점’ 체제가 막을 내린 것이다.

바로 그 6개월 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과학자가 소련에 핵 기밀을 건네준 혐의로 체포된다.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였다.

그리고 한 달 뒤. 전기기사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그의 부인 에셀이 이 ‘세기의 범죄’에 공모자로 연행된다.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매카시즘의 광풍(狂風)이 몰아치고 있었으니.

증거는 줄리어스의 처남인 그린글래스의 증언이 유일했으나 한 달 만에 사형이 선고된다.

그리고 1953년 6월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2년여. 세계는 거센 논란에 ‘뒤척였다.’

아인슈타인, 사르트르, 러셀, 피카소, 브레히트…. 세계의 지성과 석학들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항의서한을 보냈다. 교황도 구명운동에 가세했다. 시위대는 연일 “야만적 사형선고”라고 외쳤다.

그러나 ‘드레퓌스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젠하워는 완강했다. 그는 소련과 맞선 냉전체제를 “빛과 어둠이 싸우고 있다”고 인식했고, 공산주의자들은 ‘죽음의 세균’이었다.

마침내 처형 당일. 오후 8시가 좀 지나 남편이 먼저 전기의자에 앉았고, 부인이 그 뒤를 따랐다.

부인은 57초 동안에 걸친 전기충격에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 두 차례나 더 전기의자에 묶였다.

그리고 처형 40주년이 되는 1993년. 로젠버그 사건은 마침내 ‘역사의 법정’에 올랐으니 미국 변호사협회는 모의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1997년 워싱턴포스트는 전직 KGB요원의 증언을 보도했다.

줄리어스와 50차례 접촉했던 알렉산데르 페크리소프가 ‘차마 무덤 속에 가져갈 수 없었던’ 비밀이다. “그는 산업정보를 제공했지 원폭 기밀은 넘기지 않았다. 부인도 스파이라고? 그녀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재판에서 ‘유일한 증거’였던 그린글래스도 거짓 증언을 했다고 고백했다. “(정부는) 협조하지 않으면 내 아내를 집어넣겠다고 협박했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누이’를 전기의자에 앉혔다?

20세기의 마녀사냥이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