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프로야구 개막 D-3/<중>감독들 가상 방담

  • 입력 2004년 3월 31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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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김응룡감독
삼성 김응룡감독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인연. 대학과 프로, 아니면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한때는 사제간이기도 했던 사이. 이젠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료 감독이 됐다. 수십 년 야구를 하다 보면 비단 좋은 추억만 남은 것은 아닐 터. 감추고 싶은 악연도 있을 것이다.

4일 대단원의 막을 여는 프로야구. 환갑을 넘겨 21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김응룡 삼성감독(63)부터 40대 초반의 초보 감독까지 8개 구단 사령탑의 교차된 인연과 지휘 스타일, 그리고 올 시즌을 맞는 각오를 가상 방담으로 꾸며봤다.

역시 군기가 바짝 든 초보 감독 삼총사가 가장 일찍 도착했다. 올해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은 두산 김경문(46), 롯데 양상문(43), LG 이순철(43) 감독. 공교롭게도 서울 부산의 대도시 연고 팀이지만 모두가 지난해 4강 탈락 팀이어서 그런지 화두는 올 성적.

“올해 롯데 괜찮을 겁니다. 제가 누굽니까. 양 박사 아닙니까.”

유일한 석사 출신 양상문 감독이 호기를 부리자 김경문 감독은 마냥 부러운 눈치. “야 너거는 구단에서 팍팍 밀어주더라. 수십억을 퍼부어 우리 팀의 정수근까지 뺏어가고. 그래도 두산 무시하지 마라. 우리는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그러자 양상문 감독의 뼈있는 농담 한마디. “내가 롯데 수석코치로 모시려 할 때 배신을 때린 게 누군데 그래요.”

고려대 시절 단짝 배터리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이순철 감독. 양 감독과는 동년배지만 연세대 81학번으로 2년 후배인 그는 막내지만 ‘카리스마의 화신’답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다.


“이상훈 파동이 났을 때 제가 이왕이면 롯데에 보내려고 한 거 알죠. 부산 야구가 잘돼야 프로야구 전체가 살기 때문이죠. 이제 우리 젊은 감독들끼리라도 합심해서 빠르고 화끈한 공격야구를 펼쳐 팬들의 발길을 야구장으로 다시 끌어들어야 합니다.”

이어 속속 자리를 채우는 지방 팀 감독들. “어, 여기 40대 감독들 모임 아닌가. 형은 이제 50대가 됐는데 왜 왔수?” 걸쭉한 입심을 자랑하는 유승안 한화감독(48)이 괜히 시비를 걸자 김재박 현대감독(50)은 특유의 소리 없는 미소로 화답.

이를 신호탄으로 지난해 챔피언 현대에 대한 파상공격이 이어졌다. 현대와 함께 3강으로 분류되는 김성한 기아감독(46)과 조범현 SK감독(44)은 “올해는 좀 살살 합시다”고 능청. 김경문 감독은 “이 참에 우리 78학번 동기생 3명이 동맹을 맺자”고 제의.

이때 삼성 김응룡 감독이 선동렬 수석코치(41)를 동반하고 마지막으로 등장하자 호형호제하던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모두가 기립해 예의를 갖춘다.

“이거 어리어리인지 어리버리인지 하는 녀석 때문에 말이야. 좀 늦었지.” 입속에서 하는 말이라 잘 들리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뜻이었을 게다.

“야, 니는 코치 초년병이 여기는 왜 와부렀냐.” 어색함을 깨고 직격탄을 날리는 이순철 감독. 85년 해태 입단 동기생으로 이감독과 선코치의 라이벌 의식은 세상이 다 아는 일. 이에 검게 그을린 선 코치의 얼굴은 검붉게 변했다.

그러자 긴급중재에 나서는 김응룡 감독. “이 감독, 너무 그러지 마라. 이제부턴 선 수석이 사실상 우리 팀을 이끌 거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프로야구. 올 겨울엔 과연 누가 웃을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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