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3년 12월 31일 17시 07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두려움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산맥을 딛고 오르는 뜨겁고 뭉클한
햇덩이 같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울음처럼 질펀하게 땅을 적시는
산동네에 내리는 눈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과
느티나무에 쌓이는
아침 까치소리 들었지만
골목길 둔탁하게 밟고 지나가는
불안한 소리에 대해서도
똑같이 귀기울여야 했습니다
새해 첫날 아침
우리는 잠시 많은 것을 덮어두고
푸근하고 편안한 말씀만을
나누어야 하는데
아직은 걱정스런 말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올해도 새해 첫날 아침
절망과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시집 '당신은 누구십니까'(창작과비평사)중에서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뽀드득 뽀드득 눈길 지나 봄길 걸으며, 풀 내음 맡고 단풍비 내리도록 달 같은 임, 해 같은 벗들 만나십시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남의 눈에 꽃으로 보이고 잎으로 보이며, 무병 무탈하고 운수 대통하십시오.
뒤돌아보면 양지의 볕보다 음지의 냉기 사무치고, 걸어갈 꽃길보다 진흙 수렁 걱정되지만 오늘은 ‘많은 것 덮어두고’ 덕담만 나누십시오. 전쟁, 테러, 지진, 태풍, 사스, 광우병, 조류독감…. ‘모오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담을 나누십시오.
오랜 언어 마을의 추장이 말씀하시길 새해 덕담엔 영적인 힘(言靈)이 실려 있답니다.
미웁고 데면데면한 사이라도 덕담 건네다 보면 묵은 앙금쯤은 눈 녹듯 사라지지 않습니까? 사람을 가장 다치게 하는 게 사람이라면 덕담 삼백육십오 일은 어떻습니까?
일년 내내 배반과 두려움 대신 까치소리를 품고, 비난과 원망 대신 덕담 품으면 사람으로 인해 사람이야 다치겠습니까?
날이야 흐리고 비바람 치겠지만 믿음이야 끊어지겠습니까? 믿음이 명약이 되어 세상 비바람도 개이지 않겠습니까?
반칠환 시인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