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문명의 감각'…우리사회 어디로 가야하나

  • 입력 2003년 10월 17일 17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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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감각/방민호 지음/455쪽 2만7000원 향연

90년대의 후반과 또 2000년대 초반의 몇 년에 걸쳐 한국 비평계를 장악한 화두는 ‘문학 권력’ 논쟁이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문명’을 이슈로 들고 나온 데는 ‘이 같은 논쟁에 발이 묶일 시점이 아니다’라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저자는 “오늘의 한국 비평은 회복해야 할 문학사적, 역사적 주제를 옆에 밀쳐두고 비평 자체의 왜소화 또는 위축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왜 비평의 왜소화인가. 저자는 오늘날 문학권력을 논하는 논자들이 ‘권력’이라는 말의 함정에 빠진 나머지 정치적 문학 논의로 시종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정 투쟁이니 전략이니 하는 말도…정치학과 군사학의 용어에 가까워 그 말들을 쓰는 순간 논자들은 문학 외적 논의의 영역에 떨어질 위험에 처한다.…문학의 리듬은 정치의 리듬과 전혀 같지 않음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논할 때인가. 저자가 준비한 대답이 바로 책의 제목을 이루는 ‘문명의 감각’이다.

“한국의 비평은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 문명에 대한 감각을 보여줄 필요에 직면해 있다. 지금까지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및 일본 문화를 이식하는 것으로 시종할 것인가…‘동아시아’에 이념적 가치를 투사함으로써 오리엔탈리즘에 옥시덴탈리즘으로 대응할 것인가, 전자도 후자도 아닌 제3의 시점을 획득할 것인가.”

납북 문학가인 김기림(1908∼?)이 이 책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이와 같은 ‘문명’적 시각에 대한 개안(開眼) 때문. 저자는 김기림이 ‘광복 전부터 문화와 문명의 현재와 미래를 두고 깊은 사유를 전개해 왔다’고 높은 의미를 부여한다. “서양과 서양 문학을 좀 더 투명하고 밝게 이해하고자 한 그는 오히려 동양의 발견을 이루어냈고,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양조차 상대화하는 고도의 안목을 구비했다.”

책 후반의 현대 작가론에는 기존 발표한 평문에 더해 처음 발표하는 장정일론·백민석론 등을 실었다. 백민석에 대해 저자는 ‘현대 도시의 첨단성, 세련됨, 문화화에 깃든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작가가 ‘결핍을 필요 이상 과잉으로 보상한다’는 점을 보완해야 할 요소로 든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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