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지오그래픽]장흥 천관산

  • 입력 2003년 10월 8일 17시 41분


코멘트
강진 해남 완도의 땅과 섬이 뒤섞여 어느 것이 섬인지, 어느 것이 뭍인지 알기 힘든 다도해의 가을 풍경. 천관산 정상의 억새평원에는 억새가 활짝 솜털꽃을 피웠다. 조성하기자
강진 해남 완도의 땅과 섬이 뒤섞여 어느 것이 섬인지, 어느 것이 뭍인지 알기 힘든 다도해의 가을 풍경. 천관산 정상의 억새평원에는 억새가 활짝 솜털꽃을 피웠다. 조성하기자
《‘아아 으악새 슬피 우우니 가으을이이인 가아아아요’

제목(첫사랑)도 ‘으악새’로 잘못알고 그리도 목청 돋워 불렀던 이 노래. 으악새가 억새의 ‘경기도 사투리’임을 모르는이 아직 허다한데 억새의 계절 가을은 또 찾아왔다. 억새 찾아 가 볼 만한 가을 산을 안내한다.》

‘점층가경’(漸層佳境). 전남 장흥의 남쪽 끝자락 천관산(해발 723m)을 두고 한 말이려니. 오를수록 아름다운 풍경. 그러나 그 것은 산에 있지 않았다. 오름을 멈추고 잠시 뒤돌아 본 산 아래 마을 관산(읍)과 그 앞의 쪽빛 남해바다에 있었다.

바다로 향한 관산의 황금벌판, 그 벌판 앞에 펼쳐진 매생이가 지천인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그 수면은 녹동항과 소록도, 고흥반도와 주변 섬과 만이 이루는 기하학적 어울림으로 진풍경을 이뤘다.

반도의 허다한 산 가운데 풍광 아름답지 않은 산은 없을 터. 그럼에도 없는 말까지 억지 춘양격으로 만들어 부름이란. 허나 세상천지 멋지다는 곳만 찾아다니는 기자에게도 이 곳 만큼은 특(特)에 별(別)을 겸했다. 그래서 감탄하는 것이다.

‘천관’(天冠)이란 부처님이 쓰신 보관(寶冠)을 이르는 말. 정상의 능선에 삐죽 튀어나온 한 무더기 바위가 마치 관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리라. 그 천관을 향해 오르던 산길. 바람은 시원, 하늘은 창창. 산타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런 가을 오후. 세상 온통 불태울 기세로 붉게 타오르는 단풍 산을 제쳐두고 이름조차 생소한 남도 바닷가의 작은 산을 소개함에는 이유가 있을 터. 가을 정취 가운데 억새 울음소리만한 것이 없는데 그 억새가 수만 평 밭을 이룬다니 아니 찾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정상부근 수만평 억새밭 은빛 群舞

그러다 뜻하지 않게 횡재를 하고나니 결국은 기자도 이 산에서 천관을 쓴 셈이 됐다. 그 횡재란 산 오르는 등 뒤로 펼쳐지던 점층가경의 진풍경이다. 뒤 돌아본 순간. 외마디 감탄사가 더 이상의 말을 막아 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하늘은 어찌도 그리 높던지. 그 아래 산과 바다, 들과 섬의 풍경은 별유천지 비인간을 노래하게 했다.

산 오름 길에 느낀 바, 천관산 주인은 바위인 듯 하다. 산등성을 포복하듯 슬며시 드러누운 여타 산의 바위와 달리 여기 바위는 고개는 빳빳, 등은 곧추세운 열혈남아의 분기탱천한 자세다. 그 모습 물끄러미 들여다 보다 심상찮음을 발견한다. 누가 일부러 집어다 가져다 놓지 않고서야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형태. 바위는 퍼즐처럼 서로 아귀를 맞춘 자세로 한 덩어리를 이룬다.

산행 중에 힘든 줄도 모르고 두 시간을 내리 오른 산은 이 산이 처음인 듯 하다. 뒤돌아 내려다 볼 때마다 피로가 싹 가시니 당연한 결과다. 드디어 다다른 천관의 바위 무더기. 그 이름은 ‘환희대’다. 안내판 글 그대로 여기 오르면 누구나 환희를 느끼고야 만다. 멋진 바위도 그렇고 산 아래 펼쳐지는 풍광도 그렇고. 그러나 진짜 환희는 지금부터다. 섣부른 탄사는 잠시 접어두고 환희대 넘어 연대봉에 이르는 능선을 주시하자.

●5시간 트레킹… 인근 녹차탕서 피로 훌훌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능선위로 드러난 것은 단 하나, 하얀 솜털로 뒤덮인 거대한 구릉이다. 억새만의 세상이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키다리 억새는 화왕산(경남 창녕군) 민둥산(강원 정선군) 것 보다 여려 보였다. 여린 만큼 억새의 솜털은 희고 부드럽다. 연대봉까지 이어진 1.1 km의 능선 길. 사람들 모습도 억새에 뒤덮여 잘 보이지 않았다.

태양이 강진만 쪽으로 뉘엿뉘엿 기우는 오후 5시. 억새밭 한가운데 섰다. 억새는 역광으로 볼 때 제 멋이 나는 법. 환희대쪽으로 뒤돌아서니 왼편 산 아래로 바다와 섬이 들어온다. 억새 솜털에 산란된 햇빛은 그 빛이 부드럽기가 열여섯 소녀의 목 뒷덜미 머리칼 같다.

가을바람이 분다. 부는 바람은 피부로만 느껴질 뿐. 허나 억새밭에서는 그 바람을 보고 들을 수 있다. 바람에 억새가 눕고 누운 억새가 바람을 나무라는 소리다. 이 소리로 가을을 짐작했던 사람들. 이제는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소리로는 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게 지금의 우리다.

전남 장흥=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 여행 정보

◇찾아가기 △자동차 루트=서해안고속도로∼목포∼2번국도∼성전∼강진∼군동∼23번국도(순지교차로)∼15.8km∼방촌/우회전∼1km∼천관산 도립공원(주차장) △고속버스=서울(강남터미널)↔장흥(하루 3회 운행) 장흥터미널 061-863-9036

◇산행루트=환희대를 향해 올랐다가 남해바다를 보고 내려오는 코스가 좋다. 5시간 가량 소요. 장천재∼금강굴∼환희대∼억새능선∼연대봉∼정원석∼양근암∼장천재.

◇억새 상태=지금이 절정. 주민들에 따르면 올해 억새는 어느 해보다 예쁘다고 함. 천관산 억새제(19일) 때는 전국에서 찾아온 차량으로 인근 도로가 북새통을 이루니 그 전에 다녀오는 것이 요령.

○ 패키지 투어

이른 아침 천관산에 올라 억새 트레킹 후 보성만의 율포해변에서 해수녹차탕으로 피로를 푼 뒤 보성차밭을 둘러보는 무박2일 일정. 11, 18, 25일 출발, 5만3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창녕 화왕산-정선 민둥산 '억새 여행'▼

민둥산 정상의 억새 평원. 나무가 거의 없는 억새만의 세상이다. 사진제공 우리여행사

가을의 전령 억새. 대낮에는 은빛, 해질녘에는 금빛이다. 솜털 부슬부슬 꽃처럼 피어나는 억새. 여리디 여려 보이는 잔털이건만 모진 바람 불어와도 기대어 눕는 지혜 덕에 바람에 휩쓸리는 낭패는 당하지 않는다. 그 억새가 지금 한창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올해는 봄가뭄이 없었던 데다 비가 자주 많이 내리는 바람에 화왕산(경남 창녕군)의 경우 몇십년 만에 처음으로 억새풀이 어른 키를 넘길 만큼 웃자라 장관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억새 찾아 떠나 볼 만한 트레킹 코스를 알아본다.

:화왕산: 해발 756.7m. 좀 가파르기는 해도 일단 올라서고 나면 발아래로 창녕 읍내와 우포늪, 낙동강 물줄기가 발아래 놓이는 멋진 곳이다. 정상의 억새 평원은 화산의 분화구처럼 움푹 패여 있는 분지의 지형에 발달했다. 넓이가 5만6000평이라니 얼마나 넓은지 짐작이 갈 것이다.경남 창녕군 (www.cng.go.kr) 억새평원을 가로지르는 가름마 형의 길은 1.1km. 매년 10월 초 ‘화왕산 갈대제’가 열렸으나 올해는 태풍 매미로 인한 수해 여파로 열리지 않는다.

△트레킹 코스=임진왜란 당시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화왕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두 가지. 읍내(창녕여중 앞)에서 오르는 자하골 코스(계단길)와 반대편의 옥천리 매표소를 통해 관룡산을 경유하는 코스가 있다. 그러나 태풍 매미로 인한 수해로 관룡사 용손대 경유 코스는 현재 통행이 막혀 있다. 창녕여중 입구에서 시작되는 자하골 코스는 콘크리트 포장길이 30여분간 이어지다가 도성암을 지난 후에는 ‘환장고개’라고 불리는 가파른 비탈이 시작된다. 한시간 남짓 소요. 트레킹 후에는 20분 거리의 부곡온천에서 온천욕도 즐길 수 있다.

△찾아가기=경부고속도로∼금호JC~구마고속도로∼창녕IC

:민둥산: 해발 1118.8m. 억새 평원 펼쳐지는 곳 치고 민둥산 아닌 곳이 없건만 정선 억새 구릉은 산 이름마저도 민둥산이다. 산나물과 약초 많이 나라고 부지런히 불을 지른 탓에 나무가 자라지 못해 민둥산이 됐다는 말이 전해진다. 어찌 됐건 억새만큼은 멋지게 자라니 이 가을에 찾아봄직하다. 강원 정선군(www.jeongseon.go.kr) .

△트레킹 코스=증산 역에서 출발한다. 정선선 철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면 민둥산 등산 안내도가 보인다. 길 따라 20분쯤 오르면 만나는 능전마을에서 개울의 다리를 건너면 등산이 시작된다. 1시간 쯤 오르면 발구덕 마을(해발 800m 가량)이 나오고 능선을 따라 40분쯤 오르면 광활한 억새밭이 시작된다. 소요 시간은 출발 지점에 따라 다른데 증산역에서는 5시간, 능전마을에서는 3시간, 발구덕 마을에서는 1시간∼1시간반 소요. 승용차는 능전마을에서 마을길로 발구덕 마을까지 오를 수 있다. 올 억새축제는 태풍여파로 취소.

△찾아가기=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제천IC∼38번국도∼영월∼석항∼신동∼문곡∼굴다리∼증산초등학교∼능전마을∼발구덕마을.

△패키지 상품 ①당일=19, 26, 11월2일 출발, 3만5000원. 화암약수, 소금강. 무박2일=18, 25, 11월 1일 출발, 4만8000원. 동해 추암해변 해맞이, 두타산 무릉계곡.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2당일〓12일출발, 소금강 몰운대 3만5000원. 우리여행사 02-733-0882

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