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그림으로…' 어린왕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 입력 2003년 10월 3일 17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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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삽화 중 하나. 왕자는 지구에서 새로 만난 장미들을 보며 자기 별에 두고 온 장미를 생각한다. 이런 회상의 장면에서 스카프는 왼쪽을 향한다.사진제공 숲

‘어린 왕자’ 삽화 중 하나. 왕자는 지구에서 새로 만난 장미들을 보며 자기 별에 두고 온 장미를 생각한다. 이런 회상의 장면에서 스카프는 왼쪽을 향한다.사진제공 숲

◇그림으로 읽는 어린 왕자/장성욱 지음/208쪽 1만원 숲

어린 왕자가 울고 있다. 자신의 장미만이 유일한 단 한 송이 장미인 줄 알았는데 지구에 와보니 수천 송이의 장미가 피어 있기에 그만 슬퍼져 우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본문을 보면 그렇다.

그런데 작가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 뭔가 다르다. 왕자의 표정에는 눈물이 없다. 이 책 저자의 말을 빌리면 ‘그의 표정과 몸가짐은 어머니 배 위에서 옹알이를 하는 갓난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신생아가 다리를 들어올리며 배밀이를 하는 모습과 흡사하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극도로 절망에 빠졌을 때마다 생텍쥐페리는 ‘온갖 신성한 것이 다 갖춰진 유아기’를 그리워하곤 했다. 비행 중 내려다 보이는 산과 언덕을 그는 인체의 이미지에 비유하곤 했다. 결국 왕자의 슬픔은 어머니를 향한 어리광의 몸짓으로 표현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유명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의 설명은 다소 충격적이다. 뱀이 다른 동물을 집어삼키는 성질은 여성 성기와 유사하며 어머니를 상징한다. 코끼리는 무엇을 상징할까. 당연히 ‘아버지’다.

‘아이는 자기도 어서 빨리 아버지처럼 크게 자라서 자신을 위협하는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을 제압하고 싶은 내적 욕망을 지니고 있다. 거대한 것에 대한 소망이 아버지 같은 코끼리로 그려진 셈이다.’

이 정도면 눈치 챌 만하지만 저자는 ‘어린 왕자’에 나타난 여러 삽화를 통해 작가 생텍쥐페리가 가졌던 심층심리를 짚어낸다. 그 핵심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서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로 이어진다.

어린 왕자가 예전 지구에 도착한 장소를 향해 걸어가는 장면. 왕자는 두 팔을 앞으로 모으고 발꿈치를 세운 채 걷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작가가 ‘상징적인 모태로의 회귀’로서의 죽음을 표현했다고 분석한다. 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거나 발꿈치를 세우는 것은 금기시된 것에 대한 접근을 시도할 때 나타나는 행동들이다. “특히 사타구니를 가리는 것은 ‘나는 남성 성기를 갖지 않았다. 그러니 어머니 속으로 들어가도 아무런 죄가 없다’는 심리의 표출이다”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런 식의 프로이트적 접근은 칼 포퍼의 말처럼 반증이 불가능해지는, 시쳇말로 ‘아니면 말고’라는 이유로 종종 배척되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정밀한 접근은 예상을 뛰어넘는 설득력을 지닌다.

어린왕자의 목도리는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날린다. 사람이 책을 읽는 습관을 통해 볼 때 왼쪽은 흘러간 과거이며 오른쪽은 미래를 의미한다. 따라서 목도리가 왼쪽으로 날릴 때 어린 왕자는 과거를, 오른쪽으로 날릴 때는 다가올 사건을 의식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어린 왕자’를 펴고 넘겨보면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저자는 세계기호학회와 세계시각기호학회 회원이며 ‘어린 왕자와 장미’ ‘생떽쥐페리의 정신 분석’ 등의 책을 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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