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송철주/자전거포 할아버지의 여유

  • 입력 2003년 8월 15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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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주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단지 뒤에는 제법 넓은 도로가 있고, 그 도로 건너에 붉은 양기와를 얹은 작은 집들이 올망졸망 늘어선 ‘시골 동네’가 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그 골목을 쏘다니는 강아지들, 담장 위로 심어 올린 호박 넝쿨,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저기 피어나는 여름 꽃들이 포근하고 정겨운 고향 마을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이곳 마을 어귀에 이순(耳順)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인인 작고 허름한 자전거포가 하나 있다.

얼마 전에 자전거를 손질하기 위해 그 자전거포를 찾았다. 나는 먼저 인사를 드린 뒤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고 여기저기 기름칠을 했지만 노부부는 그저 당신들의 일만 하셨다.

파리채 손잡이에 막대를 이어대고 테이프를 감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유유자적해 보였다. 찾아오는 손님이 너무 적은 탓에 습관처럼 굳어진 일상이려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삶의 과정에서 얻어진 지혜와 여유가 바로 저런 모습이리라 생각하니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할아버지, 기름값은 받으셔야죠.” 바람 넣은 값은 아니더라도 기름값은 조금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여쭈었더니, 할아버지는 “암, 받아야지” 하며 그때서야 내게 눈길을 주신다.

“얼마나 드려야…”라며 주뼛주뼛하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10만원이야”라고 말씀하신다. “네?” 놀란 토끼 눈이 된 나를 보며 할아버지는 “그깟 기름 한 방울 썼다고 무슨 돈이야”며 너털웃음을 터뜨리셨다.

할아버지는 바퀴에 바람이 다시 빠질지 모르니 한 번 타보고 가라며 오히려 나를 배려해 주기까지 했다.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을 나는 그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그 환한 웃음과 넉넉함에서 나는 한 첩의 탕약을 먹었을 때의 은근한 뿌듯함을 떠올렸다. 질서가 무너지고 혼돈이 넘쳐나는,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 모두의 마음에도 그런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이 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았다.

송철주 서울 노원구 중계동·서울 중계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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