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61…1933년 6월8일(6)

  • 입력 2003년 3월 7일 18시 07분


코멘트
“쪽바리 새끼들! 강도 주제에 어깨에 힘만 잔뜩 주고!” 윤정수(尹丁秀)도 가래 덩어리를 토끼풀에 퉤 뱉었다.

“현장감독 야마다는 힘주고 다니는데, 그 기술자는…이름이 뭐라고 캤더라?”

“모른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안경으로 통한다”

“안경으로 충분하다”

“그 안경은 와 늘 벌벌 떨고 있는고?”

“그렇게 벌벌 떠는 쪽바리는 내사 처음 본다. 자기 그림자를 보고도 간 떨어지는 거 아닌가 몰라”

배시중은 불이 붙어 있는 담배를 강에 던지고, 어깨 너머로 재빨리 등뒤를 살피고는 하아하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내려온 안경다리를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끌어올리는 시늉을 했다. 인부들은 손뼉을 치고 김치 냄새 풍기는 입김을 토하며 껄껄 웃었다.

“아이고, 막걸리라도 한 잔 걸쳤으면 딱 좋겠다”

“저녁 때, 돌아가면서 한 잔 하자”

건너편 돗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 현장감독과 기술자가 도시락 뚜껑을 닫자 만식과 기하는 빈 냄비와 솥과 그릇을 안고 둑을 뛰어올라갔다. 도수 높은 검은 테 안경을 낀 기술자는 물통에 담긴 보리차로 입을 헹궜다. 현장감독은 이쑤시개로 이 사이를 쑤시면서 일어나더니 두 손을 허리에 대고 등을 젖히고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하늘을 향해 몸을 쭉 폈다. 작업 개시, 현장감독의 굵은 목소리가 이 편에 닿았다. 각기 제자리로 돌아간 조선인 인부들은 어기영차 상사디야 하고 구령을 붙이면서 동아줄을 잡아당기고, 다리를 받칠 말뚝에 쇳덩어리를 박았다.

쾅, 쾅 하는 소리에 놀란 비둘기들이 건너 강가에서 일제히 날아올라 미나리를 뜯고 빨래하는 여자들 옆으로 날아 내렸다.

“이씨네는 그 며느리가 들어온 뒤부터 영 신통치가 않네. 딸은 열한살 나이에 물에 빠져 죽었재, 서방은 마흔살에 병사했재, 양쪽 다 예사로 있는 일이 아이다. 그 며느리의 팔자가 엔간히 드센 모양이다”

“어매야, 아직 모르나? 오늘 새벽에 사내아를 낳았다고 카더라”

“사내아를!”

“그거 참말로 잘 됐네”

“사내아를 낳았으니께네, 모든 게 다 잘 될 낍니다” 종실(宗實)은 한 오라기 흐트러짐 없이 쪽 진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동아줄을 당기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확인했다. 지난달에 갓 시집을 온 터라, 아직 처녀 시절 티가 가시지 않은 귀여운 표정이다.

글 유미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