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60…1933년 6월8일(5)

  • 입력 2003년 3월 6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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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시중은 키들키들 웃으며 노래를 그치더니, 주머니에서 담배 깡통을 꺼내들고 일어서서 강 쪽으로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가면서 종이에 말아 불을 붙였다. 보라색 연기가 어깨에서 등뒤로 흘렀다.

“상해사변이 작년 1월이었재” 배시중은 담배를 입에 문 채 태양을 향하고 눈을 찌푸렸다.

“일본군이 중국에서 난리도 아이다”

“앞날이 대체 우째 될 건지. 어이, 나도 하나 주라”

신우만(申右滿)은 배시중에게서 담배를 한 개비 받아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고는, 두 볼을 오므려 힘껏 빨아들였다.

“상해사변이 나고,두 달 후에 만주국이 건국됐다”

“오족협화(五族協和), 왕도락토(王道樂土), 아이고 누가 믿겠노”

“왜놈은 믿으니께네 점점 밀고 들어오는 거 아이겠나”

“올 3월에는 국제연맹에서도 탈퇴했다 카재”

“국제연맹은 42 대 1로 만주에서 일본군이 철퇴하는 안을 가결했으니, 국제연맹에 그대로 눌러 있을라카면 철퇴를 해야 하는 기라”

“일본놈들을 누가 막을 끼고”

“아이고, 상해 의열단은 뭘 하고 있는 기고”

“의열단이 뭘 우째 하겠나”

“아니재, 김원봉 장군이 뭔가 보여줄 끼다”

“글쎄, 잡히면 교수형이다”

“왜놈은 조선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산들바람만큼도 안 여긴다 말이다. 솔솔 살랑살랑 솔솔 살랑살랑”

“아이고, 왜놈 손에 죽은 동포는 숨도 못 쉬고, 살아 있는 우리들은 숨을 죽이고 있고. 강도들만 당당하게 숨을 쉬고 있으니, 아이고 빌어먹을!”

“조선에서 나는 쌀은 깡그리 일본으로 들고 가버리니, 그야말로 보릿고개다”

“우리 소작인들한테는 탈곡기하고 뉘 담았던 바가지밖에 안 남았다”

“2월에는 풀뿌리하고 나무껍질로 연명을 했으니, 살아 있는 하루하루가 기적인기라”

“왜놈들은 조선 사람들한테는 눈도 없고 귀도 없다. 있는 것은 입하고 손발뿐이다”

“아이고야, 바른말 하네. 명령하고, 때리고, 차고”

“욕하고, 옭아매고, 짓밟고”

“눈하고 귀도 있다. 하루 24시간 망보고 무슨 소리 하나 엿듣고 있다 아이가”

“우가키 짜슥, 뭐가 내선융화(內鮮融和)고. 초센, 초센이라고 바보 취급하면서” 신우만은 침과 일본말을 함께 토끼풀에 내뱉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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