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야생초 편지'의 환경운동가 황대권씨

  • 입력 2003년 2월 4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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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 나가는 야생초를 보며 나의 처지가 그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밟아도 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야생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닮고자 하였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잡초이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무진장한 보물을 보며 하느님께서 내게 부여하신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신뢰하게 되었다.’(‘야생초 편지’ 서문 중) 서울의 기온이 영하 14도까지 떨어진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세종로 네거리의 한 카페에서 ‘야생초 편지’의 저자 황대권(黃大權·48)씨를 만났다. 자줏빛 개량한복에 까만 중절모, 낡은 헝겊 가방을 둘러멘 그는 “광릉수목원에 다녀오는데 길이 막혀 늦었다”며 미소로 첫인사를 대신했다.》

나이 서른에 간첩으로 몰려 마흔 넷이 될 때까지 13년 2개월을 1평짜리 독방에서 살아야 했던 인물. ‘나는 결백하다’는 절규와 애절한 몸부림에 귀기울이지 않은 사회에 절망하지 않고 교도소 앞마당의 들풀을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 지금은 생태공동체 건설을 위해 열정적으로 뛰고 있는 환경운동가….

수감 중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를 엮어 출판한 ‘야생초 편지’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야생초 관찰 일기지만 실제로는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한 젊은이가 타율과 감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생명의 몸부림이다. 좌절의 암흑을 희망의 빛으로 바꾼 그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추방당한 젊음

그는 서울대 농대 74학번으로 유신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대학을 다녔다. 그가 ‘운동권’이 된 것은 농대 교정에서 할복 자결한 ‘김상진 열사 사건’을 목격한 이후다.

“제대한 뒤에 잇따라 10·26과 12·12, 5·18이 터졌고 도망을 다니다가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어요. 그랬지만 순수한 학생 운동 차원이었죠.”

1982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미국 웨스턴일리노이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운명을 뒤바꾼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소위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고 명명된 사건의 주역들이다.

“한국 학생이 150명 정도 됐는데 운동권 출신들이 가깝게 지냈지요. 아무래도 성향이란 게 있는 거니까. 자주 정치 토론도 하고 광주항쟁 비디오 상영회도 하고…, 내 추측인데 그때 이미 (그런 활동이) 국내에 보고가 된 것 같아요.”

뉴욕의 사회과학대학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으로 옮겨 ‘제3세계 정치학’을 전공하던 그는 1985년 여름방학에 잠시 귀국했다가 안기부에 전격 연행됐다. “이유도 모르고 끌려가 남영동 분실에서 60일간 고문을 당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 중 한명이 귀국길에 평양을 방문했던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를 포함한 간첩단 사건이 만들어진 것이죠. ‘너도 평양에 갔다온 게 틀림없다’고 다그치며 고문을 하는데,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했어요.”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나머지 두 친구는 사형이었다.

“판사가 ‘사형’이라고 하는 소리를 ‘4년’이라고 들었어요. 4년이면 나는 1∼2년이면 되겠다 싶었는데 ‘무기징역!’ 하더라고요.”

●야생초 편지

그는 두 번 죽었다고 말한다. 안기부 고문 때 한번 죽었고, 대전교도소에서 묶인 채 징벌방에 2개월간 갇혔을 때가 두 번째 죽음이었다.

“너무 억울하게 들어왔으니까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면회나 편지도 직계가족 외에는 안 되고…. 생각한 게 고문 받은 과정을 상세하게 쓴 ‘밀서’였죠. 1988년 당시 함세웅 신부님이 사장으로 있던 평화신문에 전문이 소개됐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는 절망했다. 단식투쟁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이후 교도소에서 또 죄를 짓자고 결심하고 난동을 일으켰다. 볼펜으로 일주일 동안 깨알같이 쓴 ‘찌라시’를 뿌리고 교도소 내 개신교 집회장을 점거한 것. 추가 징역 3년을 받더라도 법정에만 선다면 결백을 입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역시 물거품. 수갑을 채우고 포승으로 묶어 2개월간 독방에 가두는 징벌만이 가해졌다.

“포승 때문에 똑바로 누워 잠도 못 자고, 수갑 때문에 ‘개밥’을 먹으며 캄캄한 독방에서 울부짖었습니다. 하느님은 왜 저를 내치기만 하시느냐고. 그러나 응답이 없었어요. 내 평생 그렇게 열심히 기도 드린 적이 없었는데…. 결국 ‘하느님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는 ‘하느님이 없다’는 말은 거꾸로 ‘어디에나 하느님이 있다’는 말과 통한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인간을 교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만든 하느님의 이미지를 머리에서 지워버린 것이라는 얘기였다.

마지막 희망이 꺾이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투옥 10개월 전에 결혼한 그는 그때쯤 이혼했다. 1개월 된 아들도 있던 터였다. 만신창이가 된 마음과 몸을 치료하기 위해 호흡, 명상, 요료법(尿療法)을 공부했다. 그때서야 눈에 띄지 않았던 교도소 마당의 야생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풀꽃 세상을 위하여

1평의 공간에 갇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문자 중독증에 걸릴 만큼 책을 읽는 일, 공상의 날개를 펴는 일….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인간의 적응력이란 게 무궁무진하더군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고 그게 익숙해지면 아예 삶에 무감각해지거나 아니면 ‘여기서 살아야겠다’ 둘 중의 하나죠.”

살기로 작심한 그는 성서 공부에 매달리는 한편 교도소의 후미진 마당 한구석에 야생초 화단을 만들어 100여종에 가까운 풀들을 심어 가꿨다. 감옥이 투쟁의 장소가 아니라 존재를 실현하는 장으로 바뀐 것이다.

그에게 큰 힘이 됐던 것은 야생초 화단 외에도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의 지원과 외국에서 보내오는 격려 편지였다.

1998년 광복절에 가석방된 그는 전남 영광에서 농사를 짓다가 노르웨이 국영방송(NIR)이 제작한 인권 관련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1999년부터 2년간 유럽에 머물며 인권 관련 집회에 참석했다. 또 영국 임페리얼 대학에서 생태농업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대학시절부터 늘 새로운 사회를 꿈꿨어요. 80년대 중반까지는 그게 사회주의인 줄 알았지만. 그런데 사회주의는 관점이 서구인들에 편향돼 있는 데다가 생산 관계 하나만 갖고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너무 부분적이고 공정하지 못해요. 그래서 발견한 게 공동체입니다.”

그는 요즘 ‘생태 공동체 연구모임’(www.commune.or.kr)을 이끌며 생태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는 부지를 찾고 있다. 자연 친화적으로 농작물과 들풀을 키우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포부다.인생에는 가정(假定)이 없다지만…, 만약 그가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쉽게 생각하면 정치학이나 사회학 교수가 되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죠. 많은 희생을 했지만, 그게 나예요. 풀꽃 세상을 만들라는 게 하느님이 주신 제 쓰임새라고 생각합니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몸에 좋은 야생약초▼

황대권씨는 처음엔 만성 기관지염을 고쳐 보려고 풀을 뜯어먹다가 야생초에 반했다. 감옥에서 어렵게 씨를 구해 각종 야생초를 키웠고, 동료들을 불러모아 ‘들풀 모둠’으로 잔치를 하기도 했다. 야생초는 야채와 달리 자연상태에서 섭취한 영양소와 천지 기운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 황씨가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권하는 야생초 몇 가지를 그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소개한다.

▽쇠비름=가장 완벽한 야생 약초. 거의 만병통치에 가까운 효능을 갖고 있다. 나물로서의 쇠비름은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르지만 쫄깃쫄깃한 게 대체로 먹을 만하다. 여름에 한창 많이 날 때 뜯어서 끓는 물에 데쳐 말려 두었다가 겨울철에 묵나물을 해 먹으면 맛있다.



▽비름=가장 서민적인 식용 야생초. 황씨가 교도소에서 가장 많이 먹었던 야생초이기도 하다. 비름은 봄부터 늦은 여름까지 내내 채취할 수 있으면서도 맛이 담백하고 뒤끝이 깨끗해 언제 먹어도 좋다. 맛은 시금치와 비슷하지만 시금치와 달리 담백하고 찬 느낌이 든다.



▽명아주=약초로서는 팔방미인. 끓는 물에 넣으면 시금치 삶는 냄새가 나고 맛도 시금치나 비름과 비슷하다. 벌레 물린 자리에 이파리를 짓찧어 붙이면 가려움증이 사라진다. 특히 청려장(靑藜杖)이라 불리는 명아주 지팡이는 짚고 다니면 신경통과 중풍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치병 효과는 차치하고 명아주 지팡이는 재질이 단단하고 가벼워서 근력이 약한 노인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왕고들빼기=야생초의 왕이라 할 수 있다. 야성미와 번식력 등 야생초의 모든 조건을 탁월하게 갖추고 있고 덩치도 크기 때문이다. 둥그런 뿌리와 대여섯 달린 잎을 통째로 깨끗이 씻어 고추장에 비벼 먹으면 맛이 쌉싸래한 게 상쾌하다. 발아력은 씀바귀나 고들빼기보다 못하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황금=뿌리가 귀중한 약재로 쓰이는 야생초. 황금이란 이름도 꽃이 아니라 뿌리 색깔이 황금빛으로 노랗다고 해서 붙여졌다. 황금 뿌리는 약재로 쓰이는데 발열 고혈압 동맥경화 담낭염 등에 좋다고 한다. 보랏빛 꽃이 두 줄로 차례로 피는데 관상용으로도 뛰어나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황대권씨는…▼

△1955년 서울 출생 △1974년 서울 경복고 졸업 △1982년 서울대 농대 농업교육학과 졸업 △1982∼1985년 미국 웨스턴일리노이주립대 정치학과, 뉴욕 사회과학대학원 △1985년 6월 구미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 선고 △1985∼1998년 대전 안동 대구 교도소 수감 △1999년 8월∼2001 10월 유럽에서 인권 운동, 영국 임페리얼대학 농업생태학 석사 △현 생태공동체 연구모임 으뜸지기

▽저서 △야생초 편지(도솔 2002) △백척간두에 서서:공동체 시대를 위한 명상(사회평론 1993)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한겨레, 2002, 공저) △가비오따스(말, 2002, 역서) △대체농업의 상호비교에 대한 연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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