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자리 뛰쳐나간’ 인수위원

  • 입력 2003년 1월 10일 19시 11분


그리스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얘기가 나온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가 지나가면 집 안으로 불러들여 침대에 눕혔다. 쉬어가게 하려는 게 아니라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몸을 잘랐고 짧으면 몸을 늘여서 맞췄다는 것이다.

9일 노동부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업무보고를 시작하자마자 인수위 사회문화여성분과위의 박태주 전문위원(48)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소동이 있었다. 박 위원은 회의실 밖에서 “노동부가 당선자의 의지를 반영하지 않았고 실천할 의지가 없다”며 흥분했다.

박 위원의 이런 돌출행동은 노동부뿐만 아니라 인수위 관계자들까지 당황하게 했다. 인수위의 몇몇 인사가 사태를 무마하려고 쫓아 나왔지만 박 위원은 끝내 회의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박 위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노동부의) 그런 보고를 계속 듣고 있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단언했다.

박 위원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출신으로 민주노총 산하 전문기술노련 위원장을 지낸 ‘박사 노동운동가’이다. 이번 대선 때는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을 지원한 것과는 달리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를 만들어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도왔고 노동특보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런 경력에 비추어볼 때 박 위원은 노동 현안에 대해 어느 누구 못지않은 뚜렷한 현실인식과 논리, 대안 등을 갖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의 눈에 노동부의 업무보고에 담긴 현실인식이 구태의연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업무보고를 채 듣기도 전에 회의실을 뛰쳐나간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처럼 ‘내 기준이 절대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박 위원은 얼마 전 같은 분과에서 일하다 내부마찰으로 사퇴한 한국노총 출신의 현기환 전문위원과 갈등을 빚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인수위 인사들이 자기 의견만을 고집한다면 걱정이다. 새 정부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은 일선 사업장의 노사협상에서는 몰라도 국가정책을 조율하는 자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지극히 ‘아마추어적인 행태’라는 생각이 드는 건 기자뿐일까.

이진기자 사회2부 leej@donga.com

트렌드뉴스

트렌드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