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이강숙/인기란 거품같은 것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8시 37분


너 투표할 거니? 안 할래. 나 아니라도 할 사람 많을 텐데 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투표권은 포기하고 나중에 가서 다른 권리를 주장하는, 그런 생각은 금물이지. 절대로 안 되지. 너는 누굴 뽑으려고 하는데? 문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뽑겠어. 문화 마인드가 뭔데? 좋은 예술 작품의 구조와 닮은 마음이지. 좋은 예술 작품의 구조와 닮은 마음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좋은 선생’이라는 말이 있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옳은 의미에서 ‘좋은 선생’이 정말 있다면 사람들은 그 선생의 지식, 기술, 삶의 태도, 인간성 모두를 닮고 싶어하지.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좋은 예술 작품’도 ‘좋은 선생’과 같은 역할을 하거든. 좋은 작품을 많이 듣거나 보면 그 작품의 구조와 닮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해.

▼´調和´ 이끌어낼 대통령을▼

그래서 음악이나 미술 시간에 좋은 작품을 많이 경험하게 하는 거지. 닮으면 어떻게 되는데? 처음엔 잘 몰라도 차차 알게 되지. 그게 뭔데? ‘하나’가 될 수 없는, 서로 상치되는 요인들이 예술 작품 속에 있는데 좋은 예술 작품은 조화 과정을 통해 상치된 개념들을 ‘하나’라는 작품으로 통일시킨다는 거야. 자네 말은 언제나 어렵네, 좀 쉽게 설명해줄 수 없어?

협화음과 불협화음이라는 말이 있는데, 협은 협대로, 불협은 불협대로 놀면 조화를 이룬 음악이 탄생할 수 없지. 악곡의 구조적 요인이 정(靜) 역할과 동(動) 역할을 할 때가 있는데, 그것들이 따로따로 놀아나면 작품이 성공할 수 없다는 거야. 서로 상치되는 작품의 구조적 요인이 따로 놀아서는 ‘하나’라는 작품을 이룰 수 없다는 거지. 남과 북, 동과 서, 노와 사, 빈과 부, 중심과 변두리라는 것들도 결국 ‘하나’가 될 수 없는 상치되는 개념들이 아닌가. 이것들을 서로 조화시킴으로 해서 ‘하나’를 만들 수 있는, 통일시킬 수 있는, 예술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거야. 인기 있는 사람이 많은 표를 얻는 세상이라는 게 또 심각한 문제야. 인기라는 것은 알고 보면 허풍이고 거품이거든.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만을 사랑해’라고 하는 식이란 말이야. 대통령은 남편과 아내 같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지, 할리우드 배우 같은 사람이어서는 안 되거든. 자기 남편과 자기 아내는, ‘자기’에겐 인기가 없는 법이지. 삶을 공유하는, 남편 같고 아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어야 하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예술 작품의 구조를 닮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거야.

인간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선택권을 주는 ‘문화의 민주화’ 정책과, 자기 이익 중심적 사고 때문에 생긴 중구난방식 문화관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미의 ‘문화의 국가화’ 정책은 서로 상치되는 개념일 수 있지. 그러나 여기서도 마찬가지야. 훌륭한 대통령은 두 개의 상치되는 개념을 조화시켜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예술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해.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요로운 여건에 놓인 사람이라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삶의 질은 없어지는 거지. 삶의 질적 향상을 보장하는 ‘정신문화(精神文化)’가 뒷받침되지 않을 때 물질은 허망한 것이 돼. 들이쉬고 내쉬는, 혹은 내쉬고 들이쉬는 호흡관계에 놓이지 않고, 경제가 상위 개념이고 예술과 문화가 하위 개념인 사회는 모래 위에 지은 성 같은 것에 불과하지.

▼예술가적 마인드 중시돼야▼

권력으로 다스릴 수 있어야 우리의 삶을 좋게든 나쁘게든 보살펴 줄 수 있다는 생각 하나 때문에,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 잡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은 안 되는 거지. 권력이 국민의 복지를 위한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나라라면 정말 큰일이거든. 권력을 잡기 위해 ‘이겨야 한다’는 마음에 앞서 ‘질 수 있는 마음’이 탄생할 때, 우리나라의 장래는 밝아지는 거지. 선진국에서는 ‘질 수 있는 마음’이 이긴다는 말이 이미 생겼다고 해. ‘질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실 만큼 우리 국민도 이젠 더 성숙해야 할 것 같아. 아무튼 투표일이 내일모레야. 절대로 투표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해. 그리고 문화대통령을 반드시 찾아야 하는 거야. 알았지. 절대로 말이야.

이강숙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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