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찬근/'미국식' 자본주의

  • 입력 2002년 12월 1일 18시 45분


16세기 초 독일의 마르틴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프랑스의 장 칼뱅은 초기 상업자본주의가 발흥하고 있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주로 활동했다. 그는 자본의 원시적 축적 과정에서 골이 깊어지고 있던 양극화 현상을 천착했고, 신학적 토대 위에서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역설하기도 했다. 훗날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그의 경제사상을 집중 조명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칼뱅은 매우 냉철한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자본의 속성인 이윤동기와 높은 생산성을 잘 살린다면 오히려 민중의 삶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원래 기독교에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먹는 대금업을 금기시해 왔는데, 칼뱅은 정당한 윤리성이 뒷받침된다면 이를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그는 생산재를 빌려줘서 생산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생산재를 마련하도록 돈을 빌려주는 것도 정당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자본의 자기 증식을 인정한 칼뱅의 경제사상은 이후 영미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퓨리턴들은 칼뱅의 뜻을 잘못 받아들였다. 칼뱅은 자본의 사회적 성과를 무엇보다 중시했으나, 퓨리턴들은 개인의 성공은 신의 은총을 받은 결과라며 부를 축적하는 데 매달렸다. 최근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빈부 격차가 심각한 나라라고 한다. 지난해 대기업 최고경영자의 평균 연봉은 제조업 노동자 평균 소득의 400배를 뛰어 넘었고, 소득수준 최상위 1%가 민간 부의 38%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조세 형평이 무너진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겉보기로는 미국의 과세 시행세칙은 매우 깐깐하다. 손님 접대용으로 마티니를 2잔 넘게 마시면 경비 처리가 안 되고, 기업체 임원들이 쓴 항공료 지출에 대해서도 경비 상한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물급들이 챙기는 막대한 스톡옵션은 세제상 전액 경비로 처리할 수 있고, 일부 특권층에 부과되던 90%의 한계 소득세율은 어느새 30%선으로 떨어졌다. 누구나 열심히 일해 건전하게 부를 쌓고 사회적 지위를 높여갈 수 있다던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 사회에서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되고 있다. 이런 ‘미국식’ 자본주의는 오늘날 미국이 자랑하는 제일의 수출품인데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이를 개혁의 바이블로 수용했다.

이찬근 객원논설위원·인천대 교수 ckl1022@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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