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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30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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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 폭폭 칙칙 폭폭, 열차 소리가 우철을 현실로 되돌려 놓으려 하는데, 우철은 또다시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그녀와 나는 혼인을 약속한 사이다. 반 년 전 아버지가 선을 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지인혜라고, 일곱 형제 중에서 여섯 째다. 첫 번째하고 일곱 번째만 남자고, 두 번째에서 여섯 번째까지가 줄줄이 여잔데, 그 여섯 번째라서 언니들한테 온 귀여움 다 받고 자랐다더라. 쌀집 처자다. 왜 너도 알지, 역 앞에 시타무라 이발소 옆에 커다란 쌀집. 집하고 창고도 다 따로따로 있고, 일하는 사람도 서넛이나 된다. 꽤 유복한 편이니까 혼수감도 많이 갖고 안 오겠나. 그런데 그 처자, 어머니한테 음식이니 바느질이니 배우면서 시집갈 준비하고 있는데, 열여섯 살 때까지 서당 다니면서 공부했다더라, 한자하고 한글도 읽고 쓸 줄 알고 명심보감하고 심청전 같은 책도 즐겨 읽는 모양이더라. 너보다 두 살이 많다. 미인은 아니라고 하더라만 며느리는 얼굴로 보는 게 아니니까. 마음씨 곱고 명랑하고 일 잘 하면 그만이다. 아무튼, 좋은 신부감이라고 평판이 자자한 처자니까 한 번 봐라. 만나보지 않고서야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니.
별 기대 않고 선을 보는 자리에 나갔는데, 절대 미인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각도에 따라서는 오히려 예쁘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괜한 거드름도 피우지 않고 꾸밈없이 똑바로 눈을 쳐다보고 얘기하는 그 말투에 매료되어, 이 여자라면 평생을 같이 얘기할 수 있겠다 싶어 신부로 삼기로 결정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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