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특집]재계 거물들 “골프 잘 풀리면 경영도 술술”

  • 입력 2002년 9월 30일 16시 43분


한때 일본에서는 “싱글 핸디캡인 기업인에게는 대출을 해주지 말라”는 말이 유행했다. 싱글을 유지하려면 일주일에 한 두 번 이상 필드에 나가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서 언제 사업에 몰두할 수 있느냐는 이유였다.

하지만 요즘은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경영도 잘한다”는 말이 더 자주 들린다. 골프는 기업경영처럼 자기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는 게임이다. 자신의 신체 조건이나 도처에 버티고 있는 워터 해저드, 벙커 등의 위험한 변수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냉정한 판단력과 감정을 통제하는 자제력이 필요하다. 싱글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모하게 사업을 확장하면서 파국을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일까, 탁월한 경영 능력을 입증한 경영인들 가운데는 훌륭한 골프 달인(達人)들이 많다.

수시로 언더파를 기록하는 코오롱 이웅렬 회장은 재계의 골프 고수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경영인이다. 최광수 프로가 가장 두려워하는 골퍼라고 말할 정도. 드라이버 평균거리도 290야드나 된다. 미국 유학시절 하루 3000개씩 연습했을 정도로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몰입하는 스타일이다.

핸디캡이 7인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필드에서 ‘타고난 승부사’로 알려져 있다. 승부사적 기질은 ‘1등 LG’를 강조하는 그의 경영 스타일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는 평소 “소심한 플레이로 더블보기를 하는 것보다 과감한 스윙으로 트리플보기를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할 정도로 골프와 경영 모두에서 자신감을 강조한다. 청년 시절에 각종 운동으로 단련한 탄탄한 몸을 가진 그는 4개 홀에서 연달아 버디를 기록했을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나다.

세밀한 분석을 토대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다는 SK그룹 손길승 회장은 골프에서도 특유의 정교함과 분석력을 주무기로 삼고 있다. 일단 라운딩 전 코스를 분석한 뒤 한 타, 한 타를 캐디와 상의해 가며 타수를 줄여나가는 전략. 라운딩을 마친 후에도 결과를 분석해 다음 라운딩 때 반영하는 스타일이다. 그 결과 53세에 클럽을 처음 잡았는데도 핸디캡은 12에 불과하다.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은 라운딩 도중 동반자가 공을 유리한 위치로 ‘슬쩍’ 옮겨 놓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은 골프를 즐길 자격이 없다는 게 그의 지론. 또 타구 방향이 정확해 한번 목표가 결정되면 연습스윙 없이 샷을 날리는 과감함도 장점이다. 핸디캡은 6.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경영혁신에 앞장섰던 경영인답게 골프에서도 ‘혁신가’다운 면모를 보인다. 티오프 30분 전부터 연습을 시작하고 라운딩이 끝나면 코치를 찾아가 ‘반성’을 한다. 그 결과 그는 80% 이상의 홀에서 파 온에 성공할 정도로 아이언의 정확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핸디캡은 12. 지난해 10월에는 안양베네스타CC 17번홀(파3)에서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아파트 전문 건설업체인 동문건설 경재용 회장은 1991년 88CC 클럽챔피언을 지냈고 베스트 스코어가 4언더파 68타일 정도로 골프 실력이 프로급이다.

86년 골프채를 처음 잡은 경 회장은 골프장에 한 번 나갔다가 골프에 푹 빠졌다. 푸른 잔디를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니…’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아침 저녁으로 연습장에서 실력을 닦아 입문 8개월 만에 ‘싱글’에 진입했다.

프로들도 하기 힘들다는 ‘노보기 플레이’를 두 번이나 했고, 한 라운드에 이글 2개를 잡는 진기록도 갖고 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