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국방부 ˝어쩌다 이 지경에…˝

  • 동아일보
  • 입력 2002년 9월 6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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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국방부 관계자들의 입에선 요즘 이런 자탄이 흘러나온다. 최근 병역면제 의혹사건을 둘러싸고 군당국의 실망스러운 행태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213명의 병역면제자 추가 명단이 공개되자 국방부는 발칵 뒤집혔다. 이미 알려진 ‘55명 리스트’ 외에는 절대로 다른 명단이 없다고 장담한 것이 불과 10여일 전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관은 물론이고 담당국장조차 존재사실을 몰랐다는 추가명단이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가 공개가 되는 바람에 문제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경위를 묻는 기자들에게 국방부는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담당국장과의 면담은 절대 안 된다. 경위를 조사 중이다”며 버텼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 상황에서도 김창해(金蒼海·준장) 법무담당관은 “검찰단장(대령)이 (추가명단을 찾아냈다는 사실을 나한테) 구두로 보고했다고 하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부하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 같은 모양새이지만…”이라면서도 자신의 무관함을 거듭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국회 국방위에서 벌어진 이른바 ‘삼령(三領)의 설전’은 수많은 군인들에게 자괴감마저 느끼게 했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장남 정연(正淵)씨의 병역면제 의혹을 둘러싸고 당시 군 검찰 수사팀이었던 고석(高奭) 대령, 이명현(李明鉉) 중령, 유관석(柳灌錫) 소령 등이 서로를 비난하며 책임공방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TV를 통해 국민의 안방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솥밥’을 먹고 있는 선후배가, 그것도 ‘음모론’까지 제기하며 설전을 벌이는 뒷자리에는 국방부의 입인 황의돈(黃義敦·준장) 대변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부끄러워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무엇이 대변인의 말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일까. 요즘 군의 모습은 ‘규율’과 ‘명예’를 생명처럼 여긴다는 프라이드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윤상호기자 정치부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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