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업씨 공개이후 수사]녹취록만으론 非理입증 힘들듯

  • 입력 2002년 8월 12일 18시 36분


이정연(李正淵)씨 병역 면제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金大業)씨가 12일 검찰에 유력한 정황 증거라며 제출한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에 등장하는 핵심 증언자가 녹취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그 내용의 신빙성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씨는 녹취록과 녹음테이프에 99년 3∼4월 병역비리 군검 합동수사 당시 전 국군수도병원 부사관 김도술씨가 자신에게 정연씨의 병역면제 과정에 개입한 사실을 시인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녹취록 공개 12일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 비리의혹과 관련된 김대업씨의 녹음 테이프를 김씨의 변호인이 녹취록과 함께 공개하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함께 공개된 전 국군수도병원 부사관 김도술씨의 진술 녹취록. 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김대업씨는 그동안 “김도술씨가 한인옥(韓仁玉)씨측에서 돈을 받고 백일서 당시 국군춘천병원 진료부장을 통해 정연씨의 병역을 면제해줬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김도술씨의 가족은 이날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도술씨가 한인옥 여사에게 청탁을 받은 적도, 김대업씨에게서 조사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도술씨측은 “녹취록의 목소리는 김도술씨의 목소리일 리가 없으며,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혀 검찰 수사가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테이프와 녹취록 내용만으로는 김도술씨가 한 여사에게서 병역면제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는지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도술씨의 ‘자백’ 없이 다른 관련자들을 조사한다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김대업씨가 공개한 녹취록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법으로 김도술씨의 발언을 녹음했는지도 분명치 않아 녹음 경위에 따라서는 증거 능력이 문제될 수도 있다.

따라서 검찰은 우선 녹취록과 녹음테이프 내용을 분석해 김도술씨의 목소리가 맞는지를 확인할 방침이다. 녹음테이프에 나오는 김도술씨의 목소리가 김씨의 실제 목소리로 확인되면 “김대업씨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는 김도술씨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기 때문이다.

검찰은 미국에 체류 중인 김도술씨를 상대로 직간접적인 조사를 시도하고 있지만 김씨가 “괜한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전 국군춘천병원 진료부장 백일서씨를 상대로 김도술씨의 청탁을 받은 헌병 준위 출신 변모씨 등에게서 돈과 함께 청탁을 받고 정연씨의 병역을 면제해줬는지를 조사했지만 백씨는 “면제 과정에 청탁이나 압력은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98년 병무비리 수사 초기의 핵심 관계자 L씨는 “김대업씨가 김도술씨 조사 내용을 녹음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김도술씨를 여러 차례 조사한 것은 사실”이라며 “김도술씨가 김대업씨에게서 조사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거짓말”이라고 상반되게 주장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김대업씨측 “99년 병역비리 수사본부서 녹음”▼

김대업(金大業)씨가 12일 검찰에 제출한 녹음테이프는 99년 3∼4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 ‘병역비리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녹음된 것이라고 김씨 측은 주장했다.

녹음된 내용은 이정연(李正淵)씨가 아닌 다른 사람과 연관된 병역비리 혐의로 검거된 전 국군수도병원 부사관 김도술씨가 김대업씨와 나눈 대화라는 것이다.

이 가운데 주요 내용은 김도술씨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부인 한인옥(韓仁玉) 여사에게서 돈을 받고 정연씨의 병역면제에 개입했다”고 말했다는 부분.

김대업씨가 김도술씨와 대화하면서 녹음한 것은 이날 검찰에 제출된 5∼6분 분량의 테이프가 전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대업씨는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속기사무소에서 변호인과 함께 테이프에 녹음된 내용을 녹취록으로 만든 뒤 서울의 한 호텔에서 녹취록 공개 범위와 시기 등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측이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의 분량은 표지를 제외하면 A4용지 3장.

녹취록에는 △첫 페이지의 중간까지는 전 부총리 N씨의 병역비리 관련 △그 다음부터 두번째 페이지 끝까지는 정연씨 관련 △세번째 페이지 처음부터 중간까지는 육군 중장 K씨의 병역비리에 관한 대화가 담겨 있다.

김씨측은 이 가운데 실명(實名) 등 상당 부분이 가려진 채 정연씨와 관련된 부분이라는 두 번째 페이지만 언론에 공개했다.

공개된 녹취록에는 김도술씨가 ‘춘천병원’ ‘병무청’ ‘다방’ 등을 언급했으며 ‘대통령선거 때 병역비리가 문제가 돼 시끄러울 때’ ‘이○○씨와 ○○○씨는 TV에 자주… 알게됐습니다’ ‘보충대에 체중미달로 부탁’ 등의 말을 한 것으로 돼 있다.

김대업씨는 보도자료를 통해 “수사에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과 증거인멸 등을 우려해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을 전면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주장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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