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살린 사람들 8]코작 波 바르샤바 시장

  • 입력 2002년 5월 26일 19시 06분


'폐허에서 첨단으로' - 박제균특파원(바르샤바)
'폐허에서 첨단으로' - 박제균특파원(바르샤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가면 도시 한가운데 거만하게 솟아 있는 문화과학궁전 건물을 볼 수 있다. 구 소련 독재자 스탈린이 폴란드 인민에게 ‘선물’했다는 이 37층 건물은 ‘권위주의 건축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바르샤바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 건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한국의 대우가 지은 초현대식 ‘바르샤바 무역타워’가 서 있다. 43층으로 폴란드는 물론 중·동유럽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과거와 현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이 두 건물이 가장 높은 스카이라인을 장식하는 도시 바르샤바. 하루가 다르게 과거에서 현대로,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기자가 찾은 20일에도 시 전역에서 공사의 기계음이 끊이지 않았다. 시 전체가 하나의 건설 현장 같은 중·동유럽 최대의 도시 바르샤바를 이끄는 현장 총감독이 30대의 보이첵 코작 시장(38)이다.

그는 1월 바르샤바 시의원들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얻어 시장에 당선됐다(폴란드는 지자체장을 간선제로 뽑는다). 정치적 영향력이 센 인물이어서가 아니었다. 오로지 98년부터 부시장으로 일한 그가 바르샤바에 기여한 공로 때문이었다.

94년 바르샤바 시의원으로 선출된 그는 의정 활동에서 두각을 드러내 98년 바르샤바의 중심이자 가장 큰 구인 센트룸구의 구청장 겸 부시장에 뽑혔다. 4명의 부시장 가운데 그의 역할은 핵심적인 도시 계획과 건설, 그리고 외자 유치.

이때부터 엔지니어 출신인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르샤바 마스터플랜’이라는 도시계획을 직접 입안하고 △도시 건설을 지휘했으며 △건설에 필요한 외자까지 끌어들이는 1인3역을 담당했다.

상하수도 현대화와 쓰레기 소각장 건설을 입안, 추진했으며 이를 위해 유럽연합(EU)에서 2750만유로(약 316억원)의 보조금을 얻어내는 한편 중앙정부와 협상을 벌여 저리 대출을 받았다.

중유럽 최대 공사라는 길이 22.1㎞의 바르샤바 지하철 2호선 건설과 바르샤바를 남북으로 흐르는 비스와강에 놓일 중유럽 최장의 시에키에르코프스키 다리 역시 그가 부시장 때 착공한 것으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가 외자 유치에 나선 뒤 지금까지 들여온 외자는 50억달러(약 6조5000억원)에 이른다.바르샤바 시장실에서 만난 코작 시장에게 외자 유치의 성공 비결이 뭐냐고 묻자 금방 바르샤바 투자의 장점이 일사천리로 흘러 나왔다.

“바르샤바는 베를린에서 모스크바로 이어지는 간선도로상에 위치한 유럽의 중심이다. 동·서유럽을 연결하는 교량의 위치로 폴란드는 물론 동유럽에 투자하려는 서유럽 기업들의 전진기지다. 200만㎢의 사무실 공간과 50만㎢의 상업 지구, 80만㎢의 창고 지구가 있다. 시민의 20% 이상이 대졸이며 훌륭한 대학들과 25만명의 학생 등 잘 훈련된 노동력이 있다.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국제공항이 있는 것은 보너스다.”

코작 시장은 “지금 바로 투자해야 한다”는 세일즈맨 같은 멘트로 ‘세일’을 끝냈다.

실제 최근 몇 년 사이 바르샤바는 중·동유럽의 금융 센터로 성장했다. 24개 외국은행이 영업중이며 바르샤바 증권거래소 거래량의 25%가 외국자본.

주 폴란드 한국 대사관의 권태면(權泰勉) 참사관은 “중·동유럽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의 절반 이상(51.59%, 2000년 기준)이 폴란드로 몰리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바르샤바에 집중됐다”고 말했다.

동유럽에서도 서유럽 물품을 구매하려는 상인들이 몰려든다. 동·서유럽 비즈니스맨을 포함한 바르샤바 여행객이 1년에 떨어뜨리는 돈이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자연히 실업률도 폴란드에서 가장 낮은 1.9%를 기록하고 있다.

바르샤바에 거주하는 김식(金湜·야겔로니안대학 역사학 전공) 박사는 “코작 시장의 최대의 강점은 시의원→구청장→부시장→시장을 거쳐 시 행정을 아래부터 위까지 꿰고 있고 여기에 기초해 업무 연속성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실에는 자신이 입안한 도시계획도와 자신이 완성할 시의 청사진이 함께 걸려 있었다. 그는 “업무 연속의 가장 큰 장점은 정치적 외풍을 덜 타는 것”이라며 “바르샤바 시장직을 정치적 경력을 쌓는 과정의 하나로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송민순(宋旻淳) 주 폴란드 대사도 “코작 시장은 정치력보다 시에 대한 열정과 업무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바르샤바 시장이 직선제로 바뀔 경우 정치적 비중이 높아지기 때문에 폴란드의 정치 거물들이 대거 출마할 것이라고 한다. 시장 재선에 실패해도 “부시장이든, 뭐든 바르샤바를 위한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그의 열정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기자가 “그래도 시장을 지낸 사람이…”라고 토를 달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누구보다 바르샤바를 잘 알고 바르샤바를 위해 일하는 게 즐겁다. 무엇보다 나는 젊다.”

바르샤바〓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바르샤바는…▼

면적 495㎢에 인구 170만명(2001년)인 중·동유럽 최대의 도시 바르샤바는 슬픈 역사를 안고 있다. 바르샤바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만 해도 전 유럽 도시 가운데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번성했다.

바르샤바시 상징 문장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독일은 1940년 바르샤바에 유대인 강제거주지역인 게토를 설치했다. 1943년 나치의 게토 거주 유대인 말살작전이 시작되자 유대인들은 “인간답게 죽겠다”며 봉기했다. 약 1개월간의 봉기를 진압한 후 나치 독일은 생존자 7000명을 모두 가스실에 보내고 게토를 초토화시켰다.

이듬해인 1944년 이번에는 바르샤바 시민들이 봉기했다. 화가 난 히틀러는 “바르샤바라는 지명만 빼고 다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나치는 바르샤바의 모든 건물에 폭탄을 설치, 도시를 완전히 평지로 만들었다.

세월은 흘러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바르샤바의 게토 영웅 기념비 앞에서 무릎꿇고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바르샤바 개황
면적495㎢(북위 55도)
인구170만명(2001년)
구성센트룸구 등 11개구
예산수입 18억6000만주워티(약 6000억원)
지출 22억4000만주워티(약 7100억원)
2000년 기준, 구청별 예산 제외
기업24만개(관영 1.5%, 민영 98.5%·1999년)
실업률1.9%
문화시설박물관 50개, 극장 32개, 도서관 177개 등

바르샤바 小史
1413마조비아 공국의 수도
1526마조비아 공국 폴란드 왕의 직속 영토로 복속
1596폴란드 왕 지그문트 3세 바르샤바로 천도
17953차 폴란드 분할
1918폴란드 독립
1940나치 바르샤바에 게토 설치
1943게토 유대인 봉기, 게토 초토화
1944바르샤바 시민 봉기, 바르샤바 초토화

보이첵 코작 바르샤바 시장(오른쪽)이 레섹 밀러 폴란드 총리와 함께 시에키에르코프스키 다리 건설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코작시장 인터뷰▼

《바르샤바 중심가의 시청 내 시장실은 협소했다. 시장실과 붙어 있는 비서실과 비슷한 크기였다. 소파 없이 조그만 티 테이블에 나무 의자 몇 개가 손님용 자리였다. 보이첵 코작 시장(38)의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서류와 도면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한마디로 철저한 ‘업무용 시장실’이었다. 》

-30대에 중·동유럽 최대 도시의 시장이라는 게 놀랍다. 부시장 4명 가운데 2명도 30대인데….

“바르샤바시 집행위원의 나이는 30대와 50대로 나뉘는데 30대가 더 많다. 폴란드에서는 요직을 차지하는 나이는 40대, 많아야 50대다. 서유럽에서는 젊은 시장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전환기에 있는 중·동유럽 국가에는 많다. 얼마 전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시장을 만났는데 나보다 두 살이나 어렸다. 에스토니아 내각에도 20대 장관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시 발전을 위해서는 젊은 세대가 가진 역동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990년 전후 중 동유럽의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기득권 세력이 무너지면서 급격한 세대교체가 일어난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48)도 41세에 당선돼 46세에 재선됐다.

-바르샤바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 출신인데, 전공이 시장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나.

“바르샤바시에 근무하는 사람의 전공을 삼분하면 정치학 인문학 공학이다. 나는 공학을 전공한 사람의 대표격이다. 공학은 논리적인 사고와 합리적 문제 해결방식을 키울 뿐만 아니라 도시 계획을 입안하고 건설을 추진하는 데 실제적으로 도움이 된다.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는 시민의 실제적인 삶에 관심이 많다.”

-올해 말 바르샤바 시장 선출 방식이 직선제로 바뀔지 모른다는데….

“지방자치단체장을 직선제로 뽑을지에 대해 하원에서 토의가 진행중이다. 만약 직선제로 바뀐다면 바르샤바 시장의 국가 권력 서열은 대통령 총리 상 하원 의장에 이어 5위쯤 될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져 바르샤바 시장에 뽑히지 못해도 유권자와 시의원들이 원할 때까지 바르샤바를 위해 일하고 싶다. 직위는 큰 문제가 아니다.”

코작 시장은 속사포처럼 답변을 쏟아내면서도 논리가 정연했다. “요즘은 매일 야근이다. 어제는 오전 2시까지 일했다”는 젊은 시장에게서 피로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바르샤바〓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코작 바르샤바 시장 약력
196312월28일생
1988바르샤바공대 전자학과 석사
1990알트콤사 정보시스템 설계사
1993민주연합당 지구당 위원장
1994자유연합당 바르샤바지구 사무처장
1994바르샤바 시의원 겸 입법분과 부위원장
1997자유연합당 바르샤바 부위원장
1998바르샤바시 센트룸구 구청장 겸 부시장
1999자유연합당 바르샤바 위원장
2000폴란드 전국도시협회 바르샤바 대표
2002바르샤바 시장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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