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3월 31일 18시 50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그는 팝에서 클래식까지 모두 즐기는 열렬한 음악팬이지만 한국 음악, 그것도 뮤지컬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극장 2층의 로열석에 그가 모습을 나타내자 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고 그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다른 나라의 예술 공연을 보는 것은 그 자체가 정치적 행위다. 고이즈미 총리는 ‘팔만대장경’ 관람을 통해 한국을 알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지난달 방한 때 국립국악원을 찾아가 가야금을 배운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공연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아름다운 멜로디가 넘쳐흐르는 훌륭한 뮤지컬이었다.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또 “일본의 문화 중 한국에서 온 것이 많아 두 나라의 오랜 관계를 실감했다”고도 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음악적 관점에서만 ‘팔만대장경’을 평가한 것도 의미가 없지 않았다. 일본의 우익학자들은 “고려는 몽골과 함께 일본을 침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사책은 ‘일본 원정’이나 ‘일본 정벌’로 표현하고 있다”며 수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후 “절인 음식(쓰케모노)은 모두 싫어하기 때문에 김치도 좋아하지 않는다”는 발언과,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강행으로 한국 국민을 실망케 했다. 그런 그가 월드컵 개막을 2개월여 앞두고 한국의 뮤지컬을 보기 위해 어려운 걸음을 했다.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의 몸짓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감사해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8월에 그가 야스쿠니신사를 다시 참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함께 ‘팔만대장경’을 관람했던 한 일본인은 농담 삼아 이런 말을 했다. “총리가 이 뮤지컬을 보고 개심(改心)해서 올해는 야스쿠니신사에 안갔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